쩍쩍 갈라진 논 적신 소방차…영남 농민 "생명 연장 수준"(종합)

경남 17개 시·군 농업용수 가뭄 단계…밀양·거제·함안 '심각'
태풍 '찬홈' 영향 비 소식에도 해갈 여부 불투명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가뭄이 장기화하고 있는 12일 오후 경남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의 한 논에서 소방대원이 급수 작업을 하고 있다. 옆으로는 농민이 급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소방청은 전날 오후 8시를 기해 경남지역에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농업·생활용수 공급 지원에 나섰다. 이에 따라 다른 시·도 소방본부 소속 물탱크차 200대와 소방대원 400명 등이 경남지역에 투입돼 오는 13일까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한다. 2026.8.12 ⓒ 뉴스1 윤일지 기자

(경남ㆍ대구=뉴스1) 강미영 기자 = 국가소방동원령에 따라 전국에서 달려온 소방차들이 12일 가뭄 피해가 극심한 경남 논밭에 긴급 급수를 시작했다.

갈라진 논은 잠시 물기를 머금었지만 농민들은 이번 급수를 "벼의 생명 연장 수준"이라고 했다. 경남 17개 시·군이 농업용수 가뭄 단계에 들었고 대구 도남지 저수율도 0%로 떨어졌다. 13일부터 경상권에 비가 예보됐지만 지역별 강수 편차가 커 해갈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날 밀양시 부북면 운전리의 한 논에서는 소방차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쩍쩍 갈라진 논바닥을 적셨다.

이곳에서 만난 이기준 대전마을 이장은 "농사지은 지 40년 됐는데 이렇게 극심한 가뭄은 처음"이라며 "소방이 아니었다면 일주일 안에 벼들이 고사했을 텐데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오늘과 내일 소방에서 뿌려주는 물은 사실 벼의 생명 연장 수준밖에 안 된다"며 "정부에서 이렇게라도 지속해서 좀 도와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함안과 양산에서도 말라붙은 논에 물길이 열렸다. 갈라진 틈을 메운 물이 고랑을 따라 벼 뿌리 쪽으로 번지자 이를 지켜보던 농민들의 얼굴에도 모처럼 안도감이 비쳤다.

지금은 벼가 이삭을 내고 쌀알을 채우는 중요한 시기다. 이때 물이 부족하면 이삭이 제대로 달리지 않거나 쌀알이 여물지 않을 수 있어 농민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다급하다.

양산시 상북면의 한 농민은 "벼가 이삭을 내고 쌀알을 채우는 제일 중요한 시기인데, 먼 길을 달려와 물을 대준 소방관들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렇다고 농민들이 마음을 놓은 것은 아니다. 한 차례 급수로는 바닥난 저수지를 채울 수 없고, 가뭄이 계속되면 소방차에만 의존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함안군 군북면에서 농사를 짓는 조현민 씨(52)는 "급수차가 와서 당장 물을 대주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라면서도 "이런 방식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가뭄에 대비한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 벼 생육에 필요한 시기에 물을 공급받지 못한 농가에서는 올해 수확량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조국래 씨(79)는 "제일 큰 문제는 저수지 물이 모두 빠져버린 것이다. 가뭄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며 "이미 제때 물이 들어가지 않은 벼는 이삭이 제대로 달리지 않을 수 있어 올해 농사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진주시 금곡면의 한 밭에 고추가 화상을 입은 채 시들어 있다. 2026.8.12/뉴스1 한송학기자

가뭄 피해는 논에서 밭으로 번졌다.

진주시 금곡면에서는 오랜 가뭄과 폭염, 강한 햇빛이 겹치면서 고추와 땅콩 등 밭작물 절반 이상에서 잎이 타는 피해가 나타났다. 빛이 바랜 잎은 말라비틀어졌고, 본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든 작물도 적지 않았다.

한정된 물을 둘러싼 농민들의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거제에서는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의 배분을 놓고 일부 농민들이 농수로 수문을 임의로 조절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농업용수 공급을 관리하는 수리시설감시원이 업무를 중단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최근 6개월간 경남에 내린 비는 586.7㎜로 평년의 60.3%에 그쳤다. 특히 지난달 강수량은 평년의 23% 수준에 불과했다.

현재 경남 18개 시·군 중 함양을 제외한 17개 시·군이 농업용수 가뭄 단계에 들어갔다. 밀양·거제·함안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분류됐다.

가뭄이 갈수록 심해지자 소방청은 지난 11일 오후 8시 경남지역에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했다. 전국 16개 시·도 소방본부에서 물탱크차 200대와 소방 인력 400명이 투입돼 13일 오후까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한다.

극심한 가뭄이 계속된 12일 오후 대구 북구 도남저수지가 말라 땅이 갈라져 있다. 평년 70%대를 유지했던 도남저수지 저수율은 지난 3일부터 0%로 떨어졌다. 2026.8.12 ⓒ 뉴스1 공정식 기자

대구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대구지역의 평년 7월 강수량은 250㎜지만 올해는 130㎜에 그쳐 평년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도남동 일대의 주요 농업용수 공급원인 도남지는 지난 3일부터 저수율 0%를 기록하며 바닥을 완전히 드러냈다. 평소 물에 잠겨 있던 저수지 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졌다.

도남동에서 논농사를 짓는 최모 씨는 "우리 논에는 농업용 관로가 연결돼 있지 않아 구청에서 관로에 물을 넣어줘도 바로 사용할 수 없다"며 "집에 있는 양수기로 관로의 물을 끌어와야 하는데 물이 부족해 벼 잎끝이 말라비틀어졌다"고 한숨 쉬었다.

농민들의 시선은 다시 하늘로 향하고 있다. 제15호 태풍 '찬홈'의 간접 영향으로 경상권에 비가 예보되면서다.

기상청에 따르면 13일 부산·울산과 경남 남해안·동부 내륙에는 10~40㎜의 비가 내리겠다. 경남 중·서부 내륙과 대구·경북 내륙에는 5~40㎜의 소나기가 예상된다.

14일까지 경북 동해안과 북동 산지에는 20~60㎜의 비가 내릴 전망이다. 15일에도 경상권 서부 내륙 일부에 소나기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

다만 소나기는 지역별 강수 편차가 크다. 이번 비가 메마른 논밭과 바닥난 저수지를 채우는 해갈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취재 = 강미영, 강정태, 이성덕, 임순택, 한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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