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인민군' 누명 쓴 고 이상규 소령 76년 만에 재심서 무죄

진실화해위 '중대한 인권침해' 진실규명 결정
검찰 "불법 구금…자백 증거 안 돼" 무죄 구형

(창원=뉴스1) 박민석 기자 = ·

12일 창원지법에서 76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은 이 소령의 장남 이동주 씨가 법원 앞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든 채 선고 결과에 대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6.2.12 ⓒ 뉴스1 박민석 기자

'해상인민군'으로 몰려 수감됐다가 6·25전쟁 발발 직후 총살된 고(故) 이상규 소령이 76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됐다.

창원지법 형사 2부(김성환 부장판사)는 12일 이 소령의 해안경비법 위반 혐의 재심 선고 공판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선고 직전 김 부장판사는 재심 청구인인 이 소령의 장남 이동주 씨(79)에게 "이 판결이 유명을 달리한 피고인에게 조금이나마 평안한 안식의 계기가 되고 유족에게 위로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 소령은 지난 1948년 12월 군권을 파괴할 목적으로 조직된 '해상인민군'에 가입하고 조직 수괴로부터 비밀 서신을 수령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1949년 7월 해군본부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마산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중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육군 헌병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24년 6월 "이 소령이 조작된 범죄 사실로 영장 없는 불법 체포와 장기 불법 감금을 당한 피해자로 확인됐다"며 '중대한 인권침해'로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판결문 등을 조사한 결과 이 소령이 해상인민군에 가입했다는 실체를 인정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고, 비밀서신 수령 혐의 등은 피해자 근무시간·지역과 근무 이력 등 객관적 사실에 비춰 범행 일자와 그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이 소령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에 유족에 대한 사과와 함께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심 등의 명예 회복 조처를 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 사건 재심은 이 소령의 아들인 이동주 씨와 이동춘 씨(77)의 노력으로 열렸다. 이들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모친 유언에 따라 2021년 7월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의 진실 규명 결정 이후에는 재심을 청구했다.

이날 선고를 마친 후 이 소령의 장남 이동주 씨는 "원통함을 참고 견디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며 "재심을 통해 76년 만에 아버님의 무고를 벗게 됐다. 이렇게나마 원혼을 달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소령은 해병대 창설을 처음 제안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1948년 여순 사건 당시 해군 임시 정대 지휘관을 맡은 경험을 바탕으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에게 보고한 작전 결과 보고서에서 "육상전투를 담당할 육전대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 씨는 "아버님이 해군과 해병대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누명을 쓰면서 그런 공적이 다 지워졌다"며 "아버님이 해군이나 해병대에 기여한 바에 대한 역사적 증명을 받아 명예 회복에도 나서고 싶다. 다만 건강이 뒷받침될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12월 9일 열린 이 소령 재심 결심 공판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재판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재 남은 증거 자료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마산형무소에서 피고인이 상당 기간 불법 구금된 것으로 확인되고, 이같은 상황에서 이뤄진 피고인 자백 진술은 증거 능력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pms710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