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공공재가 사라진다] ② 65층 아파트 '그늘' 드리우는 부산시민공원
부산시, 자문위 구성하고 용적률 10% 축소 제안
지역사회 "자문위 제안 역부족…시가 결단해야"
- 박기범 기자, 박세진 기자
(부산=뉴스1) 박기범 박세진 기자 = 100년 만에 시민들에게 돌아온 부산시민공원이 인근지역 고층아파트 재개발을 두고 갈등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시민공원을 둘러싸고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정비 촉진사업’이 추진 중인데, 시민을 위한 공공재가 특정 소수만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부산시민공원 3면 둘러싼 65층 아파트 '그늘'
부산시민공원은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토지조사를 통해 이 부지를 일제에 빼앗겼으며 해방 이후에는 미군 군사기지로 활용되면서 약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타국의 부지로 이용됐다.
1995년 시민들이 직접 부지반환운동에 나서 2006년 반환이 결정됐다. 2010년 1월27일 부지를 정식으로 반환받은 부산시는 2011년 8월11일 기공식을 갖고 공원건설에 착수해 2014년 5월1일 정식 개장했다.
이에 앞서 시는 2007년 열악한 주거환경개선과 도시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부산진구 범전동 시민공원 주변 등을 6개 구역으로 나눠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 2008년 재개발 계획을 결정·고시했다.
당초 부산시는 총 89만5970㎡ 부지 중 부산시민공원부지 54만3360㎡를 제외한 35만2610㎡ 부지를 대상으로 최대 용적율 800%, 제한층수 65층(상가, 주택의 경우 60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를 짓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지역주민들은 향후 시민공원이 조성될 예정인 만큼 60층의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시민들의 조망권 침해 등 각종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부산시 안에 반대하고, 시민공원재정비촉진계획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10년 법원이 부산시 손을 들어주면서 대규모 아파트 개발은 확정됐다.
시는 2016년 9월 당초 계획대로 ‘주민공원주변 재정비촉진지구 및 촉진계획 변경 결정’을 최종 고시했다.
당시 고시에 따르면 △1구역(부암동 24-100번지 일원)·2-1구역(범전동 263-5번지 일원)·2-2구역(범전동 400번지 일원)은 각각 공동주택·부대복리시설·판매시설 용도, 건폐율 60% 이하, 용적율 810% 이하, 최고층수 65층 △3구역(범전동 71-5번지 일원)·4구역(양정동 445-15번지 일원)은 각각 공동주택·부대복리시설 용도, 건폐율 30% 이하, 용적률 300% 이하, 최고층수 60층으로 정해졌다.
이 과정에서 부산시민공원은 2014년 완공됐고 매년 700만명에 가까운 시민이 방문하는 부산의 대표적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았다.
◇ "공공성 훼손"…부산시 제동
문제는 이 같은 개발계획이 시행될 경우 시민공원의 공공성이 훼손된다는 점이다. 시의 최종고시 가운데 △촉진1구역 △2-1구역 △2-2구역 △3구역 △4구역 등은 시민공원 3면(동·서·남)을 둘러싸고 있다.
공공재인 시민공원을 둘러싸고 대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조망권이 훼손되고, 시민공원을 향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민선7기 오거돈 부산시정은 시민 전체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사업을 중단시켰다. 지난해 11월 경관위원회에서 '시민자문'을 거쳐야 한다고 결정했고, 시는 전문가 등 16명으로 구성된 시민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에 나섰다.
자문위원회는 6차례의 회의를 진행한 끝에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고 사업 수정안을 공고했다.
자문위 조사 결과, 당초 계획대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경우 시민공원 전체 면적 가운데 23.27%가 하루 일조시간에 연속해서 2시간 이상 확보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헐적으로 하루 4시간의 일조시간이 확보되지 않는 곳도 19.12%에 달했다.
부산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시민공원 주변에 46층~65층의 고층아파트 건설 시 높이 적절성'을 묻는 질문에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78.3%로 부정적 여론이 높았다.
'시민공원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경우 시민공원의 공익 훼손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훼손된다'는 대답이 83.3%로 '훼손 안됨' 5.8%를 압도했다.
◇용적률 10% 축소 제안…역부족 비판
자문단은 구역별 용적률을 10% 낮추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아파트 높이가 30~45층 규모로 줄어들어 일조권이 확대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공공성 훼손을 막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이어졌다. 자문위 발표 당시에도 자문위 내부 소수의견을 전제로 "일부 안은 지역주민의 재산권만 지나치게 보호하고 시민 전체 이익에 반하는 ‘공공성’이 훼손된 안"이라는 토를 달았다.
자문위 발표 직후 지역 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자문위가 제안한 안은 결국 아파트를 건설한다는 것"이라며 "공공성 문제를 지적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안은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4일에는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부산공공성연대, 부산민중연대, 부산환경회의 등으로 구성된 ‘부산지역 시민사회 상설연대기구’(연대기구)가 오거돈 부산시장을 만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개발사업 중단을 요청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당시 만남에서 "시민공원의 역사적 가치와 공공성을 반드시 지켜나가겠다"고 화답했지만 시가 사업을 중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측은 부산시의 용적률 10% 인하 방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합 측은 2008년 부산시 결정에 따라 진행되는 사업이 정책결정자가 바뀌었다고 뒤집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행정이라고 맞서고 있다. 자문위가 제안한 용적률 10% 축소를 두고는 사업성이 없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민은주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부산시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 처장은 "앞서 부산시의 행정 문제로 인해 지금까지 온 사안"이라며 "앞선 시장이 특별관리구역으로 묶는 등 보전장치를 했어야 했는데, 이를 하지 못한 채 개발사업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사업 중단에 따른 조합측의 문제제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사업을 중단할 경우 매몰비용이 발생하지만 이를 부담해서라도 공공재를 지켜야 한다"며 "대법원 판례 등을 감안할 때 공공성에 가치를 둔 판결이 나올 수 있다. 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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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부산에는 바다와 산, 공원 등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공재가 많다. 부산의 해수욕장은 부산시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누리는 대표적 공공재다. 하지만 이들 공공재가 최근 '개발사업'에 직면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뉴스1은 <부산, 공공재가 사라진다> 기획을 통해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