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안창마을의 '푸른 눈 어머니'..루미네 수녀 기념관 개관

1992년 부터 2009년까지 부산 안창마을서 봉사의 삶

30일 개관한 ‘루미네 수녀 기념관’ 기념식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이축사를 하고 있다. ⓒ News1 김민경 기자

(부산=뉴스1) 김민경 기자 = “나는 안창 백씨입니다”

독일 오스나브뤼크 출신 루미네 수녀가 늘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그의 한국이름은 ‘백광숙’.

1992년부터 2009년까지 부산 안창마을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며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았다. 지금은 마샬군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를 기리는 ‘루미네 수녀 기념관’이 30일 부산 안창마을에서 개관했다. 개관식에는 안창마을 주민들이 대거 참석해 그를 기억하고 감사함을 전했다.

루미네 수녀가 안창마을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졌듯, 안창마을 주민들도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기념관 개관식에 한 시간 전에 도착한 안창마을 주민 고성자(63)씨는 "루미네 수녀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공부시키던 모습을 직접 옆에서 봐왔다"며 “2009년에 수녀님이 떠나 서운했는데 이렇게 기념관이 생겨서 가슴이 울컥한다"고 말했다.

루미네 수녀가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70년이었다. 한국으로 파견돼 2년간 언어공부를 마치고 천주교 부산교구 언양본당에서 어린이 교리교육과 의료봉사활동을 하다가 79년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만났던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잊지 못한 그는 십년 뒤인 1989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동구종합사회복지관 간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안창마을과 인연을 맺게 됐고, 그때부터 ‘안창 백’씨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루미네 수녀가 안창마을에서 2평 남짓한 판잣집을 구해 공부방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부산동구청 제공)ⓒ News1

1992년 5월부터 안창마을에서 2평 남짓한 판잣집을 구해 본격적으로 공부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공부방에는 세 살짜리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12명이 루미네 수녀와 함께 생활했다. 아이들에게 수녀는 ‘푸른 눈의 어머니’였다.

2009년 마샬군도로 선교활동을 하기위해 떠나 지금까지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안창마을에 봉사와 희생의 정신을 깊이 뿌리내리게 한 상징적인 존재다. 루미네 수녀가 운영했던 공부방은 현재 보호가 필요한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그룹홈 시설인 ‘우리들의 집’으로 이어지고 있다.

루미네 수녀와 함께 활동한 벨라데닷 김영숙(80) 수녀도 이날 루미네 기념관을 찾았다.

김 수녀는 "루미네 수녀의 독일 성 ‘Bäckman’을 소리나는 대로 바꿔 ‘백’자로 정하고, 빛이라는 의미의 루미네는 ‘광’, 우리 집안의 돌림자인 ‘숙’자를 이어 백광숙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줬다"며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손에서 자라던 두 살배기 쌍둥이를 직접 데려와 동시에 엎고 안아 키운 루미네 수녀의 일화도 유명하다”고 말했다.

박삼석 동구청장도 "6.25전쟁 전후로 안창마을은 부모가 없거나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동네였다"며 "이번 기념관 개관을 루미네 수녀의 희생과 봉사정신을 이어 받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이 부족해 10평 규모로 세워질 예정이었던 ‘루미네 수녀 기념관’은 삼정기업의 무상기부를 받아 150평 규모의 광장과 함께 20평 규모의 2층짜리 건물로 지어졌다.

기념관 1층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광장행사지원시설로, 2층은 루미네 수녀의 활동 사진이 전시돼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의 정신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날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온 한 동네 주민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던 고마운 사람”이라고 루미네 수녀를 회상하며 “잊혀져가던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기념관이 만들어 진 것이 내 일인마냥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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