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복(諡福) 124위, 신유·기해박해때 순교 많아

천주교 박해때 순교자들을 처형하는데 사용한 형구돌. 연풍성지에 전시돼 있다. © News1 장동열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시복(諡福, 복자로 선포)이 결정된 124위 순교자들은 신해박해(1791년)부터 병인박해까지 순교한 천주교 초기 신자들이다.

대규모 박해로 기록되는 신유박해(1801년) 순교자가 53위로 가장 많고 기해박해(1839년) 전후 순교자 37위, 병인박해(1866년) 순교자 20위,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 14위 등이다.

윤지충과 권상연 순교자는 이종사촌 사이로 전라도 진산 출신이다. 1790년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신주를 불사르고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렀다. 이에 조정에서 체포령을 내리자 두 사람이 자수했고(진산 사건)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됐다.

주문모 순교자는 중국인 신부로 조선에 입국한 첫 성직자다. 구베아 주교에 의해 조선에 파견,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1794년 입국, 강완숙 집에 피신하며 성사를 집전했다. 6년만에 조선교회 신자 수가 1만명을 기록했으며 801년 신유박해 때 귀국 결심했으나 순교하기로 마음먹고 자수, 새남터에서 효수형됐다.

정양용의 형인 정약종 순교자는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의 아버지다. 형 정약전에게 교리를 배우고 입교했다.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2권을 집필, 주문모 신부의 인가를 얻어 교우들에 보급했다. 평신도 단체 '명도회' 초대 회장으로 1801년 순교했다.

강완숙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출생으로 입교 후 한양으로 이주해 주문모 신부를 도와 여회장으로 활약했다. 자택을 주문모 신부 피신처 겸 집회 장소로 제공했고 1801년 서소문에서 참수됐다. 오늘날까지 여성 평신도의 롤모델로 존경받고 있다.

유항검 순교자는 전라도의 첫 신자다. 별칭은 '호남의 사도'로 양반 가문 출생이다. 성직자로 임명돼 활동하다(가성직제도) 교회법에 어긋남을 알고 그만둔 뒤 성직자 영입에 노력했다. 주문모 신부를 호남으로 모셔 성무 집행을 보조했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 한양으로 압송, 능지처참형을 선고받은 뒤 전주 남문 밖에서 순교했다.

유중철과 이순이 순교자는 유항검의 아들과 며느리다. 두 사람 다 일찍이 동정생활의 뜻을 주문모 신부에게 전했고 주 신부의 주선으로 혼사가 성사돼 동정을 서약하고 오누이처럼 생활하다 1801년 순교했다. 투옥 후 유중철이 아내에게 보낸 "누이여,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는 말이 유명하다. 전주교구에서는 이들을 기리는 '요안 루갈다제'를 매년 가을에 실시하고 있다.

이성례 순교자는 최경환 성인의 부인으로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 집안 사람이다. 박해를 피해 자주 이주하면서 자식들을 성경 이야기로 다스리고 수리산에 정착한 뒤 남편을 도와 교우촌 개척에 노력했다. 투옥 후 남편이 순교하고 젖먹이 막내가 죽어가는 것을 보며 배교, 석방됐으나 장남 최양업이 신학생으로 중국에 유학 중임이 드러나 재투옥됐다. 처형 전에 면회 온 자식들에게 '형장에 오지 말라'고 당부하고 당고개에서 참수됐다. 현재 당고개 순교성지는 이성례 마리아를 테마로 조성됐다.

위 순교자들 중 유중철·이순이 동정부부, 최양업 신부 모친 이성례는 드라마틱한 일대기로 인해 오페라, 뮤지컬 등으로 변주되며 천주교 문화 콘텐츠의 원형이 되고 있다. 평화방송TV는 강완숙(양미경 주연), 유중철·이순이(김무열 이윤지 주연) 일대기를 2부작 드라마로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senajy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