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쇳물과 붓질로 그린 순간의 기록"…윤희 '즉흥'전

리안갤러리 서울 6월 30일까지

윤희 '즉흥'전 엽서 (리안갤러리 서울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쇳물이 바닥에 부딪혀 세차게 튀어 오르는 순간이 그대로 굳어버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오는 6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조각가 윤희의 개인전 '임프라버제이션'(Improvisation, 즉흥)은 통제할 수 없는 물질과 우연이 만들어낸 강렬한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14일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윤희 작가는 "스스로 완성의 기준을 정해두지 않는다"며 "작업하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필연적인 기운이 솟아올라 화면이 스스로 멈추는 순간을 마주할 때 비로소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핵심 작품 세계인 '즉흥'을 중심으로 조각과 회화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신작을 선보인다. 프랑스 남부의 외딴 시골 작업실에서 마주한 특유의 강렬한 빛과 석양의 기운은 작품 속에 청량하고 풍부한 색감으로 스며들었다.

14일 윤희 작가가 '개인전 '임프라버제이션'(Improvisation, 즉흥)이 개최되는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윤희 작가에게 즉흥은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충동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감각을 바탕으로 눈앞의 상황에 온전히 몰입하는 상태를 뜻한다.

윤희 작가는 "나는 무대 위에 선 즉흥 연주자와 같다"며 "연주자가 긴장감 속에서 온몸을 던지듯, 작가 역시 머리로 계산하기보다 물질의 흐름에 감각을 맡긴 채 작업에 뛰어든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대표적인 쇳물 조각은 극한의 조건 속에서 탄생한다. 주물공장에서 뜨거운 쇳물을 원뿔형 구조물에 붓거나 던지면, 쇳물은 순식간에 흐르고 굳으며 예측 불가능한 형태를 만든다. 완벽한 원뿔을 생각하는 공장 기술자들과 달리, 작가는 반만 굳거나 거칠게 흘러내린 흔적을 모두 작품으로 받아들인다.

윤희 작가가 '개인전 '임프라버제이션'(Improvisation, 즉흥) 전시 전경. ⓒ 뉴스1 김정한 기자

물질과 행위가 만난 단 한 번의 사건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작품 제목 역시 관객에게 정답을 제시하는 열쇠가 아니라, 그저 작품을 구분하기 위한 최소한의 표시에 불과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뿐만 아니라 한층 더 넓어진 회화 신작도 만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종이에 물을 붓고 파스텔을 반복해서 긋던 드로잉 실험은 이제 캔버스 위로 확장됐다. 과거 대구 전시가 쇳물을 던지는 듯한 한순간의 포착에 집중했다면, 이번 서울 전시의 회화들은 붓고, 뿌리고, 긁어내는 등 더욱 다양한 행위를 담았다.

계획된 틀을 깨고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끊임없이 모험을 떠나는 윤희의 작품들은 관객에게 강렬한 생동감을 전한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