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닌 손끝으로 읽는 세계"…엄정순 '보푸라기 - 촉각적 사건'전

학고재 3월 28일까지

엄정순 '보푸라기 - 촉각적 사건'전 전시 전경 (학고재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학고재 갤러리에서 3월 28일까지 엄정순 작가의 개인전 '보푸라기 - 촉각적 사건'이 열린다.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미술 작업을 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보는 것'에만 집착해 온 우리의 관습에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보통 눈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촉각, 청각 같은 다른 감각들은 시각을 돕는 보조 수단으로 밀려났다.

엄정순은 이러한 감각의 계급을 무너뜨리려 한다. 전시장에는 약1000권의 점자책과 '코없는 코끼리' 조각이 놓여 있다. 관객은 눈으로 작품을 훑는 대신, 직접 만지고 느끼며 몸 전체로 작품을 받아들여야 한다.

엄정순 '보푸라기 - 촉각적 사건'전 전시 전경 (학고재 제공)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손끝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감각의 진동이 촉각과 청각, 신체 전반의 감각으로 인식의 확장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전시 제목인 '보푸라기'는 무언가와 계속 부딪히고 쓸릴 때 생겨나는 작은 흔적이다. 우연의 산물로 보푸라기는 누군가 의도해서 만든 예쁜 모양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그 자리에 접촉과 마찰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말이나 사진으로 남기기 힘든 미세한 경험들이 보푸라기처럼 우리 몸에 남는다는 뜻이다.

작가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관객은 전시장에서 잠시 멈추고, 손끝으로 작품을 더듬으며 스스로 방향을 찾아야 한다. 멀리서 바라만 보는 시각과 달리, 촉각은 대상과 내가 직접 맞닿아야만 성립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만지는 경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