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럼 절실한 이 부부의 사랑…24년 만에 돌아온 '몽유도원' [리뷰]

창작 뮤지컬 '몽유도원'

2026 뮤지컬 '몽유도원' 공연 사진. 아랑과 도미를 연기하는 배우들.(에이콤 제공)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나는 우리나라 설화 속에서 이와 같이 피처럼 절실하고, 죽음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일찍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고(故) 최인호 작가가 삼국사기에 수록된 '도미전'에 매료돼, 이 설화를 바탕으로 소설 '몽유도원도'를 펴내며 남긴 말이다. 이후 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을 연출한 윤호진은 이 소설을 읽고 "전율을 느꼈다"며, 2002년 이를 무대화했다. 도미와 아랑 부부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와 연출가의 창작욕에 불을 지핀 셈이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뮤지컬 '몽유도원'은 도미와 아랑의 사랑, 그리고 백제 왕 여경의 헛된 욕망을 통해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인생의 의미를 그린다.

24년 만에 새로 단장해 돌아온 공연은 수작(秀作)이다. 규범이 지배하는 궁궐과 자연의 도원을 각각 직선과 곡선으로 형상화한 무대는 선명한 시각적 대비를 이루고,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담아낸 수묵 영상은 몰입감을 더한다. 특히 오케스트라 선율 위로 흐르는 판소리와 정가, 대금과 꽹과리는 귀를 사로잡았다.

관객 가슴에 돋을새김으로 남을 장면도 적지 않다. 특히 여경과 도미의 바둑 대국 신은 백미다. 무대가 거대한 바둑판으로 변하고, 흑돌과 백돌 의상을 입은 앙상블들이 기품 있는 칼군무를 펼쳤다. 수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음악도 중모리장단에서 휘모리장단으로 속도를 높이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숨 가쁘게 전개된 이 장면이 끝나자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2026 뮤지컬 '몽유도원' 공연 사진. 여경 역의 민우혁(오른쪽)과 아랑 역의 하윤주.(에이콤 제공)

배우들 연기와 노래 모두 흠잡을 데가 없다. 여경 역의 민우혁은 손에 넣었다고 믿었던 아랑이 사라진 뒤 욕망이 집착으로, 집착이 광기로 변해 가는 인물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청아한 음색이 돋보이는 하윤주는 온화함 속에 단단한 심지를 지닌 아랑 역에 제격이다.

특히 도미 역의 얼터네이트 윤제원이 눈에 띈다. 1막 말미, 여경에게 두 눈을 잃고 벼랑 끝으로 내몰린 도미가 절규하듯 부르는 '어이해 이러십니까'는 단연 압권이다. 그의 절창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놀(NOL) 티켓 평점은 10점 만점에 9.9점. "정갈하게 잘 차린 한 상을 대접받은 기분", "종합예술 패키지" 등 호평이 이어진다. 다만 "영상 중심의 배경으로 무대가 조금 휑하게 느껴진다", "도미와 아랑의 사랑 서사가 더 보완되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일부 보인다.

'몽유도원'은 오는 22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