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치레를 걷어낸 순수한 실존…정서영 개인전 '오늘 본 것'

서울시립미술관 9월1일~11월13일

정서영 개인전 '오늘 본 것'(서울시립미술관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조각가 정서영은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일상의 사물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물리적 경로이며 세상과 관계 맺는 장이라는 의식을 작품에 담고자 한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형'(形)으로 포착하느냐가 늘 고민이다.

정서영의 개인전 '오늘 본 것'은 바로 이러한 담론을 보여주는 1993년부터 제작, 발표한 주요 작품들과 신작 9점을 포함한 총 33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일상적인 재료의 간결한 조합으로 다양한 차원의 의미를 생성하고 역설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 풍부한 함축적인 의미를 생산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기회다.

정서영은 '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생각, 감정, 상황 등의 다양한 요소가 변화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다가 불현듯 관계를 맺어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 찰나가 바로 작가가 추구하는 '조각적 순간'이다. 이렇게 그는 지난 30여년간 바로 이러한 유·무형적 요소까지 조각에 포섭하는 시도를 해왔다.

이 때문에 정서영은 일상의 그대로의 모습인 '리얼리티'(실존)를 드러내고자 화려한 치장을 거부한다. 그에게는 장판, 헝겊, 스펀지, 카펫, 철사, 책상, 목재, 시멘트 덩어리, 플라스틱, 고무 등이 그 자체로 모두 조형의 재료가 된다. 일상에서 무심코 존재하지만, 이들 고정된 물체 너머에는 유동적인 양상을 드러내는 일종의 관계적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에서 각각의 사물은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고 다른 사물과 소통하며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고 관계를 맺어 이야깃거리와 의미를 생성한다. 이 같은 '나-사물-세계'는 정서영의 전작을 아우르는 핵심 개념이며 '조각적 순간'이다.

정서영, 전망대, 1999, 나무, 유리, 210 x 120 x 88 cm, 아트선재센터 소장. ⓒ 1999.정서영. (사진 : 권오열). ⓒ 뉴스1

전시 초입에 배치된 작품 3점은 정서영의 예술적 세계관과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초기작들이다. 침대를 올려놓은 것 같기도 하고 다락방 같기도 한 '전망대'는 사물에 대해 알려진 사실과 믿음에 대한 합의를 깬다.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형상이 보이는 '파도'는 동적 또는 무형의 것을 조형 예술적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다. 벽면에 무심하게 걸려 있는 '-어'에서는 망설임, 놀라움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한 '어'라는 글자 하나가 무한한 열린 가능성을 암시한다.

한국 현대미술이 다양성과 개별성을 획득한 시기로 일컬어지는 1990년대에 현대 조각의 동시대성을 견인한 작가로 평가되는 정서영은 현재까지 조각을 포함한 드로잉, 사운드,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와 영역에서 유연하게 조각의 문제를 다루는 예술적 실험을 지속해 오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1일 시작돼 오는 11월1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개인전에서 정서영 작가의 '조각적 순간'을 만날 수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