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은 왜 평생 모은 민화를 프랑스에 기증했나
김달진박물관 '작가가 걸어온 길-화가와 아카이브'전
이우환, 김기창, 이응노 친필편지 등 이색자료 공개
- 김아미 기자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중략) '동경한국전' 때는 저 때문에 선생님이 많은 욕을 먹었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얘기를 일체 안 해서 그렇지 실은 저를 앞에 두고 직접 호령하는 선배도 있었고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런 그림 집어치우라고 근대미술관 모 씨에게 청원을 올린 작자도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서글프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아직 남 앞에 자랑할 만한 작품은 없습니다마는 그렇다고 남도 아닌 자기나라 선배들에게 기막히는 모욕을 당할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저 때문에 선생님이 어떠한 곤궁에 빠져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선생님께 그 애로를 덜게 할 수 있는 길은 앞으로 더 한층 배워서 그네들에게 떳떳이 자랑할 수 있는 작품을 내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1969년 4월3일, 오늘날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이 된 이우환 화백이 당시 국제조형예술가협회 한국 대표이자 '제5회 IAA 동경총회' 한국 대표였던 이세득 선생에게 보낸 친필 편지의 일부분이다.
이 화백이 거론한 '동경한국전'은 1968년 7월19일부터 9월1일까지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현대회화전'을 일컫는다. 그는 '일본통'이었던 선배 화가 이세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도쿄에서 열렸던 한국 전시에 참여하고 난 후 많은 한국 작가들로부터 비난을 들어야만 했던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하고 있다.
'한국현대회화전'은 일제 해방 후 23년만에 한국 현대회화가 본격적으로 일본에 소개된 전시였다. 이우환, 이세득과 함께, 변종하, 최영림, 정창섭, 전성우, 하종현, 김훈, 김영주, 권옥연, 이수재, 남관, 박서보, 곽인식, 유영국, 김종학, 김상유, 이성자, 유강열, 윤명로 등 20명의 한국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 화백은 한국 작가들을 일본 화단에 소개하는 이 전시에 참여하면서 동료 작가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던 것으로 편지에 적혀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관장 김달진)에서 오는 20일부터 '작가가 걸어온 길-화가와 아카이브'전을 개최한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작가들의 아카이브 자료 400여 점과 작품 4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이우환 화백을 비롯해 운보 김기창, 서양화가 류경채의 친필편지 등 이색 자료들이 공개된다.
이우환 화백은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화가이자 이론가다. 일본 현대미술 운동인 '모노하'(物派)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하며 1970년대 한국 단색화 계열 추상회화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했고, 이를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미술 사조로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다. 그러나 한국 출신으로 작가 인생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던 그는 한국과 일본 양쪽 미술계에서 줄곧 비난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특히 국내 미술계에서는 이러한 비난의 이유 중 하나로 이 화백이 평생 모은 민화를 프랑스에 기증한 사례를 꼽기도 한다. 화가이자 이론가, 눈밝은 수집가이기도 했던 이 화백은 일본에 흩어져 있던 한국 민화 100여점을 수집했다.
그러나 한국 미술관에 자신의 수집품을 기증하려던 그의 몇 차례 시도는 우리 민화에 무관심했거나 무지했던 미술관 관계자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결국 그가 평생 모은 민화는 프랑스 파리의 국립 기메동양박물관에 넘어가게 됐고, 이후 '이우환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보물급' 민화들은 프랑스 국립미술관의 몇차례 순회전을 통해 해외에 알려지게 됐다.
이번 전시에는 모노하 운동의 선구자였던 이 화백의 민화에 대한 오랜 관심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공개된다. 1975년 일본 강담사에서 발간된 이 화백의 저서 '구조로서의 회화-이조의 민화에 대해서' 별쇄본과 함께, 이 저서를 토대로 1982년 국내 열화당에서 낸 '이조의 민화-구조로서의 회화'를 볼 수 있다. 또 2001년 이 화백이 기증한 민화들을 중심으로 기획됐던 기메박물관의 '한국의 향수'전 도록도 전시에 출품된다.
김 관장은 "이 화백은 민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이라며 "우리 민화를 '추상적인 환상'(abstract fantasy)이라고 부를만큼 전통문화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그의 면모를 이번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화백 외에도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친필 엽서도 볼 수 있다. 운보가 1979년 유럽 여행 당시 한국화가 심경자 씨에게 보낸 엽서에는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한국 거장의 겸손함이 엿보인다.
"미국 일 끝내고 완이 부부와 같이 이태리, 로마, 파리를 들렀네. 다시 보는 이태리 르네상스 문예 부흥기의 예술의 극치,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두 사람은 진정 하늘이 내린 화가들이란 걸 재확인했네. 두 천재와 쉴 줄 모르는 노력의 발자취는 나를 몹시 부끄럽게 했고 하늘에게 용서를 빌 정도일세 (중략)"
김달진 관장은 “작품을 통해 본 창작자로서의 화가는 개별적인 존재로 독창성이 부각되지만, 아카이브를 통해 본 화가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존재들로서 친근감이 느껴지게 된다”며 “이 때문에 화가의 세계를 제대로 탐색하기 위해서는 아카이브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다”고 이번 전시의 의의를 설명했다.
전시는 2017년 4월29일까지. 문의(02) 730-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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