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덕후의 인썸니아] 인디밴드와 팬 이야기- "나도 팬이 많았으면 좋겠다"

얼마전 어느 한 밴드가 페이스북에 "우리는 왜 팬이 없지?"라며 "팬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밴드는 사실 매우 멋져서 팬이 많은 밴드이므로 아마 욕심을 좀 낸 것이거나 농담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며 팬의 입장에서, 나는 어쩌다가 어떤 밴드의 팬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돌아보며 뮤지션에게 팬이란 뭘까, 또 팬에게 뮤지션이란 어떤 존재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밴드가 열망을 가지고 그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 바로 '팬 만들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팬이란 단순히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뮤지션에 대해 좋아하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므로, 말하자면 사람의 '감정'과 관련된 문제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사람마다 기호가 다른 법이니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으려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대중성'이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매력을 갖춘다는 의미가 되겠죠. 많은 팬들을 거느린 아이돌 그룹처럼 키가 크고 늘씬하고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겼고 등등.

하지만 인디뮤지션을 좋아하는 저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일반적인 매력에 호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그 사람만의 매력'에 더욱 끌리는 경향이 있지요. 가령, 기타를 잡는 손가락 모양이 독특하다거나 목소리가 거칠다거나 눈빛이 도전적이라거나,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랄까요. 그러니 인디뮤지션이 이런 개개인의 기호 취향에 모두 일치하는 매력을 가지고 많은 팬을 거느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물론 인디뮤지션이라고 대중적이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인디 팬들의 '공통적인' 기호, 즉 뛰어난 연주실력을 바탕으로 그 위에 잘생긴 외모, 세련된 무대매너까지 갖췄다면 아마도 많은 팬들이 따르는 밴드가 되겠지요. 하지만 타고난 외모나 성격이 그렇지 않은 경우, 외모를 꾸며주는 기획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습한다고 생기는 쇼맨십이 아니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디 신의 팬이란

몇만명이나 되는 팬클럽을 거느린 아이돌이 즐비한 대중음악계와는 달리, 인디 신은 규모가 작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대중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대중'보다 수가 적은 것은 당연합니다. 공연이 열리는 장소 또한 관객이 많이 들어갈 수도 없는 작은 곳입니다. '상상마당'처럼 큰 공연장 몇 개를 제외하면 홍대 인근의 라이브 클럽들은 10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면 큰 편입니다. 그러니, 아이돌 팬 10명과 인디밴드의 팬 10명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몇만명 중 10명이라면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숫자에 불과하겠으나 관객 100명 중 10명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공연을 보는 사람 100명 중 10명이 그 밴드의 팬이라면, 나머지 관객 90명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파워집단이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인디밴드의 팬은 수의 많고 적음보다는 '얼마나 충성도있는 팬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인디밴드의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 중에는 혼자 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물론 친구와 함께 오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대중적이 아닌 음악이니 친구와 같은 밴드를 좋아할 가능성도 그만큼 작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쑥스러워서 팬이면서도 티를 내지 못하고 수줍어하며 조용히 공연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공연 때 열렬히 환호하지 않고 반응이 없어 보이는 관객 중에도 사실 알고보면 팬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팬들을 앞으로 나서게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저같이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는 '대한민국 아줌마'는 쑥스러울 것도 없어서 좋으면 좋다고 법석을 떨곤 하는데, 이렇게 나서는 팬들이 생김으로서 숨어 있던 조용한 팬들이 움직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사람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나 하는 심정이 되는 것이지요. 즉, 나설 만한 팬들을 좀 더 독려해서 활발한 반응을 이끌어내도록 한다면 숨은 팬들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팬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중에 낯 익은 팬들에게 말을 거는 뮤지션들이 간혹 있습니다. 공연과 관련된 말들, 즉 "멋있어요!'라는 환호에 "고맙습니다" 정도의 대화는 상관없지만, 팬에게 잘 해주려는 마음으로 친한 척하며 "지난번 공연 때는 이러저러 했었는데 오늘은 왜 그래요?"라든가, 페이스북에서 나눴던 개인적인 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든가, 이렇게 특정 팬과 사적인 대화를 하게 되면 그 외 관객들은 오히려 소외되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그 뮤지션과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이런 경우를 직접 본 적이 있어요) 팬들은 무대 위 뮤지션이 자신을 알아봐 주는 것이 좋겠으나 새로운 팬을 끌어들이는 데는 이미 실패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적인 대화라면 SNS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팬들은 뮤지션의 공연모습뿐 아니라 무대 아래의 일상생활도 무척 궁금합니다. SNS에 꾸밈 없는 일상적 모습을 살짝 공개함으로써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더욱 강조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서도 똑같이, 특정 팬들과만 너무 친하다면 새로운 팬이 다가설 여지를 주지 않는 결과가 되므로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혹 SNS에 일방적으로 밴드 홍보글만 잔뜩 올리고 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보이곤 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입니다.(뮤지션도 그렇겠지만 팬들도 마찬가지예요) 댓글 하나를 놓치지 않고 성의껏 답해주는 뮤지션은 성실하고 배려심 있게 느껴지는데, 수만명의 팬을 가진 아이돌이라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인디 뮤지션의 팬이 일일이 답글을 달 수 없을 만큼 많지는 않으므로 조금만 신경쓰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내 글에 대답을 해주는 것만큼 황송하고 기쁜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 팬들의 충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인디 신의 팬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SNS에 올리는 수고를 기꺼이 하는 적극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류를 따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소신을 갖는 성격이라서 그렇겠지요. 물론 아이돌 팬들 중에도 적극적인 사람들이 많지만, 비율을 따져보면 인디 신의 팬들의 적극성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팬들 중에는 좋아하는 밴드의 팬 페이지를 운영하거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또는 인디음악을 홍보하는 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심지어는 직접 공연을 기획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획사가 중심이 되어 팬들을 움직이는 대중음악계와는 달리, 인디 신에서는 그 역할을 팬들이 직접 주도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좀 더 많은 팬들을 적극적으로 만든다면(한 사람이라도!) 그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커집니다. 예를 들자면, 요즘 인기가 드높아지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밴드 '제8극장'은 1년 전만 해도 페이스북 공지글에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연때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좀 올려달라'는 재미있는 가사의 '유령팬이 되지 말아요'라는 곡을 발표하자, 사실은 이들을 좋아하지만 수줍어서 표현을 못하던 몇몇 숨은 팬들이 뜨끔하여 여기저기에 공연 사진, 영상이나 후기 등을 올리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의 표현에 힘입은 또다른 숨은 팬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또 소문을 들은 새로운 팬들이 생겨서 지금은 공연 때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인기 밴드로 자리잡았습니다.

팬에게 뮤지션이란

소위 '덕질'을 하는 팬들은 그 성격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뭔가 '해주는 것'을 행복해한다는 점이지요. 이타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준 것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지는 성격이라고 할까요. 이런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현실에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가령 연예인처럼 나와 직접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마음껏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편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마구 애정표현을 했다가는 이런저런 오해를 살 소지가 있기 때문이죠. 즉, 팬들에게 뮤지션은 애정표현의 대상입니다. 직접 얼굴을 보고 표현하든 아니면 그 뮤지션 몰래 혼자 좋아하든, 팬이란 애정의 대상이 있어야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뮤지션은 팬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뮤지션들은 자신의 일상을 너무 솔직하게 다 보여주기보다는 어느 정도 신비감을 유지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팬들과 성심성의껏 커뮤니케이션을 하되, 너무 편한 친구사이처럼 되지 말고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설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선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사생활까지 모두 샅샅이 알고 싶지만 그렇다고 다 알고 싶지는 않은, 참 어려운 팬의 마음) 특히 저같이 나이 많은 아줌마라면 뮤지션들이 실제로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사실 다 알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은 '실제의 그'가 아니라 '내가 상상하여 만들어 놓은 가상의 인물'일 것입니다. 그런 환상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솔직하지 않은 가식은 금방 알아챌 수 있거든요)

한편, 팬들 역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며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입니다. 아무리 뮤지션에게 애정을 쏟는 것을 즐기는 팬들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뮤지션들이 착각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뮤지션'이 아니고 '팬 자신'이라는 것. "너네들 내 팬이지? 나 보러 온거지? 자 어때! 나 멋있지?" 라는 듯한 태도로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이 가끔 있습니다. 팬들이 멋있다고 느끼는 뮤지션은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수고스럽게 공연장에 온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좋은 연주를 보여주려는 사람, 자신을 좋아해주는 팬들에게 고마워할 줄 하는 사람, 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입니다. 진심을 담은 연주와 배려심 있는 눈빛, 그것이 바로 팬들이 사랑하는 '멋진 뮤지션'이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진심이 그것을 가능케 하리라

어떻게 하면 팬이 생길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억지로 하려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멋진 곡을 만들고 외모를 꾸며도 관객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멋진 사람은 대중음악계에 널려 있으며, 인디 신의 팬들은 그런 겉모습에 혹하지 않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진심'입니다.

성격에 따라 SNS가 불편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팬들이 남긴 글에 댓글을 쓰는 것이 도저히 내키지 않는 뮤지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가식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디오테잎'이나 '앵클어택'처럼 SNS를 거의 하지 않고 참으로 불친절하게 공연 공지나 겨우 올리는 밴드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뮤지션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그렇게나 많은 이유는, 그들의 음악에서는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관객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공연. 관객들과 시선을 맞추고 미소를 짓지 않아도 그들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집중하고 있는 눈빛, 자신들의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여 땀이 줄줄 흐르도록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에서 결국은 관객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그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연주에 푹 빠져서 무아지경이 된 표정은 큰 눈이나 오뚝한 코의 얼굴보다도 훨씬 더 잘생겨 보입니다. 그런 모습에 설레어 심장이 콩닥거릴 때 그 뮤지션과 눈이라도 마주쳤다면 그 순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이 되는 것이 팬입니다.

"어떻게 하면 팬을 만들 수 있을까요"라 묻던 욕심많은 뮤지션님! 이미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항상 열심히 연주하고 또 팬들을 배려하고, 팬들과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사이를 유지한다면 아마도 금방 팬은 늘어나지 않을까요. 조바심 내지 말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하는 것, 그것이 정답일 거예요.

필자 강지연은

나이가 좀 되는 서울아줌마.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가서 패션스쿨을 다녔으나 배운 것을 써먹은 적은 없음.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 시골의 대명사 오클라호마에서도 살았던 경험 있음.

2007년 우연히 본 인디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에게 한눈에 훅 빠져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탠딩 공연이라는 걸 가보게 되고 그 공연에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타, 베이스와 드럼연주 모습에 넋을 잃고 그 후 홍대 인근 클럽을 쏘다니며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는 취미를 얻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일본 Bunka 패션스쿨 졸업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졸업

k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