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보려거든 광주로 오라"
[인터뷰] 9월4일 아시아예술극장 개관페스티벌을 앞둔 김성희 예술감독
- 박정환 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나우 점프'가 가장 기대됩니다. 아시아 신진예술가와 기획자 15명을 선발해 아시아예술극장 개관축제로 초청한 프로그램입니다. 이들이 축제 기간동안 공연을 자유롭게 보면서 동시대 예술을 맘껏 흡수하도록 기획했습니다."
김성희 예술감독이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그가 가장 기대한다는 '나우 점프'의 정식명칭은 '아시안 컨템포러리, 나우 점프!'(Asian Contemporary, Now Jump!)다. 이 프로그램은 로버트 윌슨, 차오밍량 등 세계적 대가들이 참여하는 50여 개의 공연과 프로그램에 비해 이름값이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표작이 9월4일 개막하는 '개관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내년 5월에 끝나는 '2015-2016 시즌 프로그램'까지 아시아예술극장을 채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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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찻집에서 만난 자리에서 "이들이 아시아의 미래다. 우리의 현재는 말을 타고 달리는 기마병처럼 끊임없이 앞으로 내달린다. 화살로 상대방을 맞추려면 지금 있는 위치를 겨냥해선 안 된다. 상대방이 나아갈 앞쪽을 겨냥해서 화살을 쏴야 한다. 아시아예술극장이 중심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아시아 예술의 미래인 이들을 붙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너그러운 형님 리더쉽'을 강조하며 "형님이 되려면 내 것을 양보하고 아시아 사람들이 와서 잔치를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이라고 선언해봐야 인정해줄 사람은 없다"며 "주인공이 되겠다고 남들을 들러리로 부른다면 누가 인정해주겠나. 일본이 돈을 쓰면서도 실패하는 이유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축제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9월4일부터 21일까지 광주로 모인다. 개막작인 '당나라의 승려'는 대만의 대표 영화감독 겸 공연연출가인 차이밍량의 작품이다. 또한, 태국의 영화감독 아핏찻퐁 위라세타쿤이 만든 첫 공연 '열병의 방'을 비롯해 우즈베스키 출신 탈가트 바탈로프의 '우즈벡', 테헤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연출가 아자데 샤미리의 '다마스커스', 싱가포르 연출가 호추니엔의 공연 '1만 마리의 호랑이' 등을 볼 수 있다.
다음은 1문1답이다.
- 개관 축제에서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공연은?
▶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연으로 중국의 전통 경극과 서구의 오페라를 접목해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시킨 중국 국립경극원의 '홍등기'를 꼽고 싶다.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사회를 꼬집는 리카르도 바르티스의 '바보기계', 콩고의 현실을 맥베스 오페라에 투영시켜 표현한 '맥베스'도 있다. 아시아 예술가들의 시각이 반영된 작품으로 근대 식민 아시아의 역사를 재고하는 호추니엔의 '1만 마리의 호랑이'도 추천작이다.
- 개관 축제 공연들이 어렵단 얘기가 들린다.
▶ 낯설 뿐이지 어렵지 않다. 국내에서는 현대성을 앞세우는 작업들도 여전히 장르로 구획돼 있다. 하지만 이미 장르의 경계를 부수고, 장르와 장르가 섞이면서 기존의 장르로 귀속되지 않는 작업들이 활발하다. 나는 예술이 감동을 주기보다는, 논쟁을 촉발하고 그래서 예술계가 액티브해지기를 바란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내 개인 취향만이 아니다. 현대예술은 질서에 대한 질문이고 회의이다. 그러한 가치가 배제된다면 어떻게 현대예술이라 할 수 있겠는가. 형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형식 자체에서 관심이 이동하는 것은 최근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감지되는 경향이다.
- 예술감독이 가장 기대하는 공연은?
▶ 개별 공연이 아니라 프로그램이다. '나우 점프'가 가장 기대된다. 아시아 신진예술가와 기획자 15명을 선발해 아시아예술극장 개관축제로 초청한 프로그램이다. 이들이 축제 기간동안 공연을 자유롭게 보면서 동시대 예술을 맘껏 흡수하도록 기획했다.
- 의외다. 이유는?
▶ 이들이 아시아의 미래다. 김남수 평론가가 내게 들려준 말이 있는데 나도 동의한다. 우리의 현재는 말을 타고 달리는 기마병처럼 끊임없이 앞으로 내달린다. 화살로 상대방을 맞추려면 지금 있는 위치를 겨냥해선 안 된다. 상대방이 나아갈 앞쪽을 겨냥해서 화살을 쏴야 한다. 아시아예술극장이 중심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아시아 예술의 미래인 이들을 붙잡아야 한다.
- 너무 장기적인 관점이 아닌가?
▶ 내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가오지 않을 먼 미래도 아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를 사례로 들어보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30여 년 전에 해외 공연을 볼 수 있는 예술장학생을 선발했다. 손진책, 윤호진, 심재찬이 뽑혔다. 심재찬은 아비뇽축제를 참관하러 프랑스로 떠났고, 손진책과 윤호진은 영국 RSC(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윤호진은 RSC가 재미없어서 피카디리 서커스를 돌아다니며 뮤지컬에 심취했다.
- 윤호진, 손진책, 심재찬의 귀국 후 활동은?
▶ 가장 문제(?)학생이던 윤호진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만들었다. 그는 귀국 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뮤지컬의 씨앗을 뿌렸고 이만큼 성장시켰다. 손진책은 극단 미추를 창단해 한국연극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심재찬은 아비뇽 페스티벌을 본딴 서울연극제를 만들어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제로 키워냈다. 나는 나우 점프 참가자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 아시아예술극장의 목표는?
▶ 아시아예술극장은 제작 중심의 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허브(Hub)를 지향한다. 예술극장은 지난 세기 서구만 바라봤던 아시아의 시선을 아시아로 돌려 서로 바라보고 공유하여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역사를 쓰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다. 아시아예술극장은 오늘의 스타가 아닌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아시아 스타를 지원한다.
- '동시대 아시아 예술의 허브'란?
▶ 과거 한국에서 일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세계와 한국의 공연예술 현장 간 시간차가 너무도 크다는 점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같은 시간으로 만드느냐가 나한테는 가장 큰 숙제였다. 일단은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과 똑같은 걸 공유해야 그다음을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예술극장에 와서 아시아에 대한 리서치, 아시아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내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해외 전문가들이 '문화권력이 비서구로 간다, 아시아가 중요하다'면서 아시아 동시대 예술작품에 관심을 내비쳤다.
- 아시아예술극장의 단계별 목표는?
▶ 단계별 목표? 없다(웃음). 지금 세팅한 게 굉장히 세심하게 고안된 거다. 미래에 주어지는 예산의 범위, 그 안에서 '창제작 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허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세팅된 상태가 3년, 5년, 7년 지속해야 한다. 정부가 인내심을 버린다면 문제가 된다. 내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내가 그만둬도 돌아가야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1년 해 놓고 성공한 사례는 없다. '아시아에서 특정 시기가 되면 최고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는 게 약속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너그러운 형님리더쉽이 필요하다.
- '너그러운 형님리더쉽'이란?
▶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이라고 선언해봐야 인정해줄 사람은 없다. 주인공이 되겠다고 남들을 들러리로 부른다면 누가 인정해주겠나. 일본이 돈을 쓰면서도 실패하는 이유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형님이 되려면 내것을 양보하고 아시아 사람들이 와서 잔치를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허브가 되겠다고 나를 중심에 놓고 주변에 들러리를 세우려면 아무도 없다.
-아시아예술극장 향후 운영방안은?
▶ 광주에서 동시대 예술관객을 창출해 내지 않는다면 예술극장은 지속가능 할 수 없다. 예술극장의 미래는 우선 광주에서 동시대 예술의 관객을 창출해 내는 것이라 믿고 있으며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술극장 관객은 광주, 한국, 아시아, 국제 관객을 아울러야 한다. 또 예술극장이 제작극장이기 때문에 예술극장에서 제작된 작품을 세계에 소개해 줄 전문가 집단이 예술극장을 찾게 할 것이다.
- 과거 작업들과 아시아예술극장 프로그램의 연결성은?
▶ '모다페'와 '페스티벌 봄'에서 내가 하고자 했던 작업은 '현대 공연' 예술 축제다. 세계에서 공연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야 한국, 결국 자신의 좌표를 알 수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자신의 형식을 찾아내려면 다른 쪽을 곁눈질하면서 위치를 잡아야한다. 모방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정금형(최근 '제16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이나 가곡을 부르는 박민희 등이 '페스티벌 봄'을 거친 것이 뿌듯하다.
- 향후 계획은?
▶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을 찾는 작업을 계속 할 것이다. 국가 안에서 뭔가를 생각하는 시간은 이미 지난 것 같다. 그것보다는 지역(region), 그러니까 동아시아나 아시아 같은 영역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반경인 것 같다. 확실한 건 계속해서 젊은 사람들과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그들을 지원하고 만들어가는 일을 하겠다. 나의 최종 목표는 국제적 작업을 제작하는 제작자이다. 작가들과 대화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제작자는 어떤 관객보다도 가장 깊숙이 작가를 만나는 사람이다.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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