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의 기적, 최초의 신장 이식 성공 [김정한의 역사&오늘]

1954년 12월 23일

신장 이식 (출처: BruceBlaus,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4년 12월 23일, 의학 역사의 거대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보스턴 피터 벤트 브리검 병원의 조지프 머리 박사팀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공적인 장기 이식 수술을 마쳤다. 만성 신부전으로 죽어가던 23세의 청년 리처드 헤릭에게 그의 일란성 쌍둥이 형제인 로널드 헤릭의 신장을 이식한 사례였다.

그간 장기 이식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모두 면역 거부 반응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실패로 돌아갔다. 타인의 장기가 체내에 들어왔을 때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이를 '침입자'로 간주해 공격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머리 박사는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유전 정보가 동일하여 면역 체계가 기증된 장기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술은 긴박하게 진행됐다. 의료진은 두 개의 수술실을 동시에 운영하며 기증자 로널드로부터 건강한 신장을 적출했다. 동시에 수혜자 리처드의 체내에 연결하는 정밀한 작업을 수행했다.

약 5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집도 끝에, 이식된 신장은 리처드의 몸속에서 즉각적인 기능을 발휘하며 소변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인간 사이의 장기 이식이 생물학적으로 가능함을 증명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이 수술의 성공으로 '장기 이식'이라는 새로운 치료 영역이 개척됐다. 유전적 동일인이 아닌 타인 간의 이식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그럼에도 리처드의 수술 성공 사례는 장기 이식이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 세계에 심어줬다.

수술을 주도한 머리 박사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1990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수혜자인 리처드는 수술 후 8년간 더 생존했다. 수술 직후 그의 건강해진 모습은 전 세계 환자들에게는 희망을, 의료계에는 큰 감동을 전했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인간 장기 이식 시대가 열렸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