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그네스' 윤석화 별세…뇌종양 투병 끝 하늘 무대로(종합)
향년 69세…연극·뮤지컬·드라마 장르 불문 배우 열정
연출·제작자로도 활동…"공연계 후배들 위해 큰 노력"
- 정수영 기자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젊은 수녀로, 홀로 딸을 키우는 재즈 가수로, 또 고(故) 안중근 의사의 삶을 무대 위에 되살린 연출가로 나서며 지상에서 연극 열정을 불태운 윤석화가 천상의 무대로 향했다.
19일 한국연극배우협회에 따르면 윤석화는 이날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그는 수년간 뇌종양으로 투병해 왔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대표작은 '신의 아그네스' '넌센스' '햄릿' 등이 있다. 특히 1983년 '신의 아그네스'에서 오직 신만을 믿는 순수한 영혼 '아그네스'를 연기하며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이른바 '아그네스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뮤지컬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1976년 '신데렐라'를 비롯해, '명성황후' '넌센스'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에서 각각 명성황후·마리아 수녀·도로시 브록 역을 맡으며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드라마에서도 인상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불새'의 미란, '사임당, 빛의 일기'의 단경왕후 신씨, '우리가 만난 기적'의 황금녀 역 등으로 대중과 만났다.
그는 또한 오란씨, 부라보콘 등 여러 제품의 광고 속 노래를 부른 한국 CM송계의 레전드이기도 했다.
연출가이자 제작가로서의 행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2년 건축가 장운규와 함께 폐허의 공간을 예술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소극장 '정미소'를 열었다. 원래 목욕탕으로 쓰이던 3층 건물을 개·보수해 192석 규모의 극장으로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정미소'에는 쌀을 찧어내듯 예술의 향기를 피워내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정미소'는 그러나 17년간 누적된 경영난으로 2019년 문을 닫았다. 마지막 공연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당시 윤석화는 폐관을 앞두고 "마지막 공연을 올린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다"며 "힘들 때도 있었지만 후배들과 연극을 한 모든 순간이 보람차다, 연극 정신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우·연출가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회사 돌꽃컴퍼니 대표이사, 공연예술잡지 월간 '객석' 발행인 등으로도 활동했다.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제1회 여성동아대상, 서울연극제 여자 연기상, 이해랑 연극상, 한국뮤지컬대상 연극상, 제41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연극무용부문상 등을 받았다.
국민성 한국연극협회 사무총장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연극의 대중화를 이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분"이라며 "연극에 대한 애정으로 후배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도움을 줬던 밝은 눈의 소유자였다"고 말했다.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연극계에서 오랜 시간 무대를 지켜온 증인이었다"며 "제2대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을 맡아 후배 예술가들을 위해 보다 나은 연극 생태계를 만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은 연극인들이 2005년에 자발적으로 설립한 비영리 민간단체로, 배우 박정자가 초대 이사장을 맡은 바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1일 오전이며, 장지는 용인 아너스톤이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1남 1녀가 있다.
j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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