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 하리, 스파이 혐의로 파리에서 총살되다 [김정한의 역사&오늘]

1917년 10월 15일

마타 하리 이미지가 들어간 프랑스 엽서 (출처: Lucien Walery, 1906,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17년 10월 15일, 네덜란드 출신 무용수 마타 하리가 독일 간첩 혐의로 프랑스 파리 근교 뱅센 기지에서 총살당했다. 신비함을 자아내는 무용으로 한때 유럽 전역의 사교계를 풍미했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변 속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마타 하리는 1876년 네덜란드 북부 레이우아르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다. 부유한 모자 상인의 딸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그가 13세 되던 해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사망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불안정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1895년 인도네시아 주둔 네덜란드군 장교와 결혼했으나, 1902년 이혼 후 파리로 건너가 무용수로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예명인 마타 하리는 인도네시아어로 '하루의 눈'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춤을 선보이며 빠르게 유명해졌다. 또한 네덜란드어 외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 상류층 남성들과의 끊임없는 염문을 뿌렸다.

그러나 마타 하리의 인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 외교관의 제안을 받아 프랑스 정보를 넘겼다는 혐의를 받았다. 영국 정보기관의 암호 해독으로 그의 스파이 활동이 프랑스 당국에 포착됐고, 1917년 2월 파리에서 체포됐다.

프랑스 군사법정은 마타 하리를 반역자로 규정해 사형을 선고했다. 처형 당일 그는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사형 집행대에 섰으며, 마지막까지 '팜므 파탈 스파이'의 전설을 남겼다.

일각에서는 마타 하리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스파이 활동이 사실이라는 독일 측 문서가 존재한다. 그의 죽음은 당대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 영화, 소설,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통해 '세기의 스파이'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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