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다는 건 함께 비 맞는 것"…말과 글로 본 신영복의 삶
- 박창욱 기자
(서울=뉴스1) 박창욱 기자 = 지난 15일 밤 '우리 시대의 지식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하늘로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떠났다.
1941년 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엄혹한 군사 독재 시절,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으로 일하다 이른바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68년 투옥됐다.
서울대 경제학과 은사이자 훗날 국무총리를 지낸 이현재 교수의 목숨을 건 구명활동 덕분에 다행히 사형만은 면할 수 있었다. 대신 무기형을 받았고 1988년 '8.15특사'로 풀려나기까지 20년간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신영복은 자신을 가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삶과 사람,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글 등을 모아 펴낸 1988년 저서 '감옥으로부터 사색'엔 그의 이런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폭서의 한 가운데 끼인 입추가 거짓 같기도 하고 불쌍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입추는 분명 폭염의 머지않은 종말을 예고하는 선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모든 선지자가 그러하듯 '먼저' 왔음으로 해서 불쌍해보이고 믿기지 않을 따름입니다.'('감옥으로부터 사색' 중에서)
신영복은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뛰어난 서예가로도 정평이 난 인물이다. 따뜻함이 묻어나는 '쇠귀체'를 창안하기도 했다.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도 그의 작품이다.
동양고전에도 조예가 깊었다. 감옥에서 수 많은 고전을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동양고전 속에서 지혜로운 삶의 자세에 대해 탐구했다. 2004년 저서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은 그 결과물이다.
'나는 그 '자리'가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 중에서)
이후 민주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신영복은 그만의 휴머니즘 가득한 진보적 사상을 사회에 전하기 시작했다. 2006년 머니투데이가 주최한 '한국자원봉사 대상'의 제정을 기념해 '함께 맞는 비'라는 휘호를 보내면서 "다른 이를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러 강연과 기고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능력은 있되 만남이 없는 경우'와 '만남은 있되 능력이 없는 경우'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은지에 대해 한동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2006년 한 기고글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다른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는 사람과의 만남에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2006년 한 강연에서)
“무릇 대학생활은 그릇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 아닌 그릇 자체의 크기를 키워야 하는 시기입니다.”(2007년 한 강연에서)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며 아이들이 숨지자 우리 사회에 쓴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는 여러 가지 정치, 경제적인 이유가 있지만 물리적인 구조 측면에서 너무 상층부만 증축하고 하부에서 균형을 잡는 평형수에 소홀했기 때문입니다.”(2014년 삼성 사장단 강연 중에서)
신영복은 사람과 함께 하는 세상을 꿈꾸던 진보 지식인이었으나, 단순한 진영 논리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대기업 노조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
그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대기업 위주인 노동조합이 제대로 연대(連帶)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대기업 노조는 하청업체와,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와 연대해야 한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2015년 저서 '담론'에도 담겼다. "연대는 물처럼 낮은 곳과 하는 것입니다. 잠들지 않는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다를 만드는 것입니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2015년 스승의 날에 감사 인사를 전하자 신영복 선생이 답례로 한 말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제자인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스승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올바르게 걸어가도록 합니다."
이 추운 겨울 밤에 우리는 스승을 떠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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