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긋남을 이야기의 문법으로 묻다

[신간] '실전 한국어'…'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 잇는 장편 연작

[신간] '실전 한국어'…'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 잇는 장편 연작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실전 한국어'는 이야기의 문법을 가르치는 소설가가 정작 자기 삶의 불규칙 앞에서 흔들리는 시간을 따라간다. 문지혁은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를 잇는 이번 장편에서 강의와 육아, 글쓰기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문학과 삶의 간격을 묻는다.

문지혁과 같은 이름의 주인공은 K대학 임용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뒤 구청의 '나도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 뽀개기' 수업을 맡는다.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면서도 자기 인생은 어떤 공식에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소설의 첫 긴장을 만든다.

주인공은 조지프 캠벨의 영웅의 여정, 낸시 O. 스미스의 스토리텔링 4요소, 플롯과 하마르티아, 아나그노리시스 같은 개념을 학생들에게 설명한다. 그러나 수강생이 "이야기로 만들면 다 말이 되잖아? 근데 그게 맞아요?"라고 묻는 순간, 그가 쌓아온 이야기의 문법은 삶의 무질서 앞에서 멈춰 선다.

소설은 이야기란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모아 말이 되게 만드는 일이라는 문장을 앞세우지만, 인생은 오히려 말이 되던 것들도 갑자기 말이 안 되게 바뀌는 곳이라고 되받는다. 이야기와 삶이 서로를 닮았으면서도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다는 역설이 이 작품을 끌고 가는 중심 질문이다.

그 간격은 '한국어 시리즈'를 관통해 온 장치이기도 하다. 소설 속 문지혁과 소설 밖 문지혁은 여러 면에서 겹치지만, 서로 닿지 않는 평행우주처럼 끝내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바로 그 어긋남 속에서 새 이야기가 시작된다.

뉴욕 생활과 두 개의 석사 학위, 영어 강의 경력, 여러 출판 작업 같은 이력은 화려하지만, 주인공의 현실은 좌절과 낙담의 반복에 더 가깝다. 전임 교수 자리도, 소설가로서의 인정도 쉽게 닿지 않는 상황에서 소설은 냉소 대신 자조와 유머를 붙들며 버티는 태도를 보여준다.

딸 은채와 이어가는 끝말잇기 장면은 이 작품의 리듬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낸다. 다람쥐에서 근엄으로 이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말의 흐름, 구청의 강의 요청에 응하고 낯선 노트를 받아들고 새 채널을 만드는 움직임은 끝이 다음 시작이 되는 삶의 규칙을 반복해서 환기한다.

2020년 '초급 한국어', 2023년 '중급 한국어'에 이어 3년 만에 나온 이번 작품은 민음사 '젊은 작가' 시리즈로 묶였다. 많은 독자가 기다린 '고급 한국어' 대신 '실전 한국어'라는 제목을 택한 이유도 분명하다. 한국어 수업에 머물지 않고 문학 수업, 더 나아가 인생 수업으로 나아가려는 문제의식이 제목에 먼저 걸려 있다.

문지혁은 2010년부터 소설을 발표해온 작가로 '나이트 트레인' '중급 한국어' '초급 한국어' '비블리온' 'P의 도시' '체이서' 등을 써왔다. '실전 한국어'는 그가 이어온 소설 작업을 바탕으로, 이해되지 않는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문장으로 붙드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 '실전 한국어'/ 문지혁 지음/ 268쪽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