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 늑대인간…서양 신화의 마지막 퍼즐은 '동유럽 신화'

고딕풍 목판화 38점과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 20점도 수록
[신간] '드디어 만나는 동유럽 신화'

'드디어 만나는 동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와 북유럽에 가려졌던 동유럽 신화의 세계를 7가지 존재와 전설을 따라가며 풀어낸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드디어 만나는 동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와 북유럽에 가려졌던 동유럽 신화의 세계를 7가지 존재와 전설을 따라가며 풀어낸다. 저자들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바바 야가 같은 익숙한 이름의 뿌리를 추적하며 이 신화가 품은 역사와 공포, 생존의 감각을 함께 짚는다.

서양 신화를 떠올릴 때 대개 먼저 나오는 이름은 제우스와 오딘이다. 이 책은 그 익숙한 축 옆에 다른 지도를 놓는다. 도입부에서 슬라브족의 기원과 동유럽 신화의 체계, '슬라브 서사시'의 흐름을 먼저 짚고 나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간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에서 시작하는 입문

첫머리를 여는 존재는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다. 저자들은 이들을 단순한 공포의 상징으로 다루지 않는다. 전염병과 죽음의 기억, 변신에 대한 상상, 재판과 처벌의 기록이 전설을 어떻게 키웠는지 따라간다.

뱀파이어 장에는 페테르 플로고요비츠와 사바 사바노비치 같은 사례가 놓인다. 이들은 18세기 초 발칸반도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하며 현대 흡혈귀(뱀파이어) 전설의 뼈대를 세운 실존 인물들이다.

세르비아의 농부였던 플로고요비츠는 1725년 사후에 부활해 마을 주민들의 피를 빨아 숨지게 했다는 오스트리아 군관의 공식 보고서가 남으면서 역사상 최초로 '뱀파이어'라는 단어를 세계에 퍼뜨리는 계기가 됐다. 뒤이어 전설이 된 사바노비치 역시 밀리코바 강의 물레방앗간에 거주하며 밀가루를 빻으러 온 이들의 피를 시시각각 노린 뱀파이어로, 민간에서 구전되다 세르비아 최초의 공포 소설인 '90일 후'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 두 명의 기괴한 사후 기록과 민간 설화는 단순한 미신을 넘어 오스트리아 왕실과 유럽 학계가 흡혈귀 현상을 진지하게 조사하게 만든 시발점이자, 오늘날 대중문화 속 흡혈귀 캐릭터를 탄생시킨 역사적 뿌리다.

늑대인간 장은 의학적 해석과 르네상스 시대 재판 기록까지 끌어온다. 1692년 라트비아 지역에서 자신을 늑대인간이라 밝힌 노인 티스의 증언도 흥미롭다.

80대 노인 티스(Thiess)는 스스로를 '신의 사냥개'라 칭했다. 당시 이단 심문 과정에서 티스는 자신이 지옥으로 내려가 악마 및 마녀들과 싸우는 늑대인간이라고 당당히 고백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늑대인간들은 매년 세 차례 밤마다 늑대로 변신해 지옥의 끝으로 찾아가며, 그곳에서 마녀들이 훔쳐 간 곡물과 가축의 영혼을 되찾아와 지상의 풍요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기괴하고도 독창적인 증언은 민속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교도적 풍요 제의와 민간 신앙의 흔적을 보여주는 가장 독특한 사례로 오늘날까지 연구되고 있다.

책은 리부셰 여왕과 바바 야가를 통해 여성 인물의 결도 살핀다. 프라하 건국 서사와 연결된 리부셰는 권력과 희생의 문제를 드러내고, 바바 야야가는 숲속 오두막과 막자사발, 긴 코 같은 강한 형상으로 동유럽 신화의 독특한 이미지를 밀어 올린다.

신과 괴물, 물과 불로 넓어지는 세계

중반부로 가면 시야가 더 넓어진다. 최고신 페룬은 수염을 기른 전사의 이미지로 제시되고, 물의 괴물 장에서는 반니크와 루살카, 빌라 같은 존재가 차례로 나온다. 마지막의 불새 장은 마법과 마녀, 날씨의 전사들, 식물과 열매까지 묶어 동유럽 상상력의 폭을 보여준다.

각 장에는 '한 걸음 더 깊이 읽기'가 붙는다. 이 대목은 이야기 뒤에 숨어 있던 종교와 역사, 풍속의 결을 드러낸다. 기독교의 도입이 신들의 위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특정 존재가 왜 정치가나 성직자와 연결돼 해석됐는지 같은 맥락도 여기서 풀린다.

목판화와 '슬라브 서사시'가 더한 시각 자료

이 책의 또 다른 축은 이미지다. 본문 곳곳에 고딕풍 목판화 38점을 실어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바바 야가의 얼굴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했다. 텍스트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기괴한 분위기가 여기서 힘을 얻는다.

부록에는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 20점이 컬러로 들어갔다. 노아 차니는 미술사학자로 활동해 왔고, 스베틀라나 슬랍샤크는 발칸반도 연구자이자 에세이스트로 알려져 있다. '드디어 만나는 동유럽 신화'는 두 저자의 결합을 바탕으로, 공포의 소재로만 흩어져 있던 동유럽 신화를 서양 신화의 또 다른 축으로 다시 세운다.

△ '드디어 만나는 동유럽 신화'/ 노아 차니·스베틀라나 슬랍샤크 지음/ 송민경 옮김/ 328쪽

'드디어 만나는 동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와 북유럽에 가려졌던 동유럽 신화의 세계를 7가지 존재와 전설을 따라가며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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