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의 겨울과 팬데믹의 기억…문혜진, 9년 만에 네번째 시집 출간
[신간] '무증상 환자'
51편의 시와 함께 산문 '문혜진의 편지', 영문 번역 시편 수록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문혜진의 네번째 시집 '무증상 환자'가 출간됐다. 9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은 다친 몸으로 버틴 겨울의 시간과 팬데믹 이후의 불안을 겹쳐 놓으며, 멀쩡해 보이지만 아픈 존재들의 감각을 시로 끌어올린다.
이번 시집에는 모두 51편의 시와 산문 '문혜진의 편지'가 실렸다. 표제작 '무증상 환자'는 최민지 번역으로 영어판도 함께 묶였다. 시집은 증상과 무증상, 침묵과 비명, 일상과 파열이 맞닿는 자리를 오래 응시한다.
책의 출발점에는 지난겨울의 경험이 놓여 있다. 시인은 빙판길에서 골절상을 입고 누워 지내며, 팬데믹 시기 병상을 견딘 어머니의 고통이 뒤늦게 자기 몸으로 번져오는 감각을 마주했다. 직접 아파 본 뒤에야 타인의 통증을 더 선명하게 받아들이게 됐다는 문제의식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이 감각은 기다림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시집은 저항이나 절망을 앞세우기보다, 오래 응시하고 견디는 동안 감각이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따라간다. 상처를 회복의 서사로 단순화하지 않고, 통증을 지난 뒤에도 남는 흔적과 기척을 시의 언어로 옮기는 방식이다.
시편 곳곳에는 숲과 새, 꽃과 별, 파도와 어둠 같은 이미지가 반복된다. 야생 나리와 산목련, 아마릴리스, 호접란이 나오는가 하면, 광화문의 빌딩숲과 유리벽, 한강 위 지하철 같은 도시의 장면도 함께 놓인다. 자연과 도시는 대립하기보다 서로 스며들며 불안과 감각의 풍경을 넓힌다.
구성은 4부로 짜였다. 1부 '무의 심연', 2부 '예지는 미지를 따라 걷는다', 3부 '말벌의 배를 찢고 나온 그 밤', 4부 '아직 무덤으로 가지 않은 발이 있다네'로 나뉜다. 각 부의 제목만으로도 시집이 무너짐과 예감, 생존과 사라짐의 감각을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드러낸다.
수록작 면면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책 속을 걷는 여자', '울티마 툴레', '북악스카이웨이', '누가 지나간다', '얼굴 작두', '밤은 말한다', '가슴과 칼날' 같은 시편은 세계의 균열을 지나가는 몸의 감각에 바짝 붙어 있다.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끌어오면서도 그 안에 쌓인 위기와 공포를 날카롭게 감지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시집은 팬데믹의 공포를 지난 시대 감각도 끌어안는다. 아파 보여도 멀쩡하고 멀쩡해 보여도 아픈 사람들이 뒤섞인 현실, 무감각과 편견이 커진 사회, 침묵 뒤에 숨은 불안이 시의 배경이 된다. 이 때문에 '무증상 환자'는 개인의 상처를 다루는 데서 멈추지 않고, 동시대의 감각 구조를 비추는 시집으로 읽힌다.
문혜진은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고 제26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질 나쁜 연애', '검은 표범 여인', '혜성의 냄새'를 냈다.
△ 무증상 환자/ 문혜진 지음/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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