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누구…"파멸의 미학 탐구하는 작가"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현존 묵시록 문학 최고 거장"
"염세주의 넘어선 아름다움 발견하려는 숭고한 시도"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Krasznahorkai László)는 헝가리가 낳은 동유럽 현대문학의 독보적인 거장이다.
그는 난해하고 도전적인 문체,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과 디스토피아적 정서를 아우르는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문학적 위상을 확고히 했다.
그는 프란츠 카프카와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부 유럽 서사 전통의 위대한 계승자로 평가받는다. 평론가 수전 손택이 그를 가리켜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 최고 거장"이라 칭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나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법학과 헝가리 문학을 공부했다. 유럽에서 유학한 뒤, 중국, 몽골,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의 이러한 경험은 종말론적 주제에 더욱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더하는 '동양을 향한 시선'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미학을 끊임없이 확장해 왔다. 영화감독 벨라 타르와 함께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등의 각색 작업에도 참여했다. 또한 미술가 막스 뉴만 등 다른 예술가들과도 활발하게 협업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적 형식에서 가장 압도적인 특징은 극도로 긴 문장이다. 그의 소설 속 한 문장은 수십 줄, 때로는 수십 쪽에 이르기도 한다. 이는 '단 한 문장의 소설'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이 실험적인 산문 형식은 언어의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물로, 독자들에게 쉼 없이 이어지는 서사의 흐름과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들을 절망적인 현실의 무기력하고 곤궁한 심연으로 끌어들여 특유의 강렬함을 창출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종말론적 불안과 실존의 황폐함이다. 그의 대표작인 '사탄탱고'와 '저항의 멜랑콜리'는 몰락 직전의 사회주의 체제 아래, 희망 없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냉철하게 그려낸다.
작품 속의 각종 사건은 '부조리와 기괴한 과잉'이 특징인 그의 세계관을 상징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관통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라고 말하며, 파멸의 미학을 탐구하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노벨 문학상 위원회는 "종말론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그의 강렬하고 선구적인 작품 세계를 인정한다"며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은 단순한 염세주의를 넘어선다. 인간 실존의 불안과 몰락을 극한까지 파헤치면서도 그 속에서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숭고한 시도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언어와 형식의 경계를 허물며 현대 문학에 가장 독창적이고 강렬한 비전을 제시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은 독특한 문체가 가진 미학적 깊이와 더불어, 현대인의 불안과 예술의 영원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가 세계적인 공감을 얻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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