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모든 사진은 '연출' 아닌 '실제'입니다"
[인터뷰] 책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펴낸 전속 사진사 장철영씨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시장을 방문하는 사진을 찍을 때 다른 정치인들은 사진찍히는 순간만 포즈를 취하고 가버리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상인들과 소주 잔을 부딪치고 그 술을 계속 같이 마셨습니다. 그분의 경우 모든 사진이 '연출'이 아닌 '실제'였습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교동 까페창비에서 만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당시 전속 사진사 장철영씨는 노 대통령의 사진의 특징을 '가식없는 삶과 그것이 그대로 반영된 사진'이라고 요약했다. 장씨는 2003년 11월부터 노 전 대통령 퇴임까지 4년여 동안 대통령의 일상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경남 봉하로 곧 노대통령을 따라가 계속 사진을 찍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7년간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다가 최근 그동안 찍은 사진과 자신의 마음을 담은 52통의 편지를 엮어 책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이상)를 펴냈다.
장씨는 노무현이라는 인간을 단적으로 잘 보내주는 사진으로 두 개를 꼽았다. 하나는 자신이 찍은 청와대 내에서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노 대통령의 뒷모습 사진이다. 다른 하나는 1990년 '3당 합당' 당시 "이의있습니다"라며 오른손을 번쩍 드는 사진이다.
장철영 씨는 자신이 찍은 사진에서 손녀를 생각하는 평범한 할아버지의 마음을 읽었다. 노대통령은 어린 손녀의 엉덩이가 아플까봐 수건을 접어 안장에 올리고 손녀를 앉혔다. 장 씨는 "임기를 마치고 고향인 봉하로 내려가서도 자전거를 탄 노대통령 모습은 여러차례 찍혔다"면서 "대통령은 고향에서도 청와대에 있을 때에도 항상 우리 곁의 이웃이었다"고 회고했다.
◇"장철영 찍는데 누구도 막지 마라"
원래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였던 장철영씨는 2명의 청와대 전속 사진사 중 한 명이 그만두고 공석이 되자 권양숙 여사 등이 추천해 전속 사진사가 되었다. 원래 대통령 전속사진사는 언론사에 보낼 보도용 행사사진을 찍는 것이 주업무였지만, 지척에서 노 대통령의 소탈하고 진정어린 모습을 보면서 사생활도 찍고 싶어져서 장씨는 그런 내용의 제안서를 제출한다.
청와대 부속실은 이를 두고 찬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그런데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니 흔쾌하게 그러라는 결정을 내렸다. 노 대통령은 그후 "장철영 찍는 데 누구도 막지 마라"고 지시했고 장씨가 사진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서보라"는 제안을 하면 "저 놈봐라. 청와대에서 대통령한테 명령하는 놈이다"며 주위 사람들을 웃겼다.
◇50만장 중 생전 노대통령이 본 것은 4장뿐
그후 장씨는 그림자처럼 노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어린 손녀를 제외하고는 노대통령 부부나 비서진 누구도 찍은 사진을 보자는 이가 없었다. 부담없이 마음껏 사진을 찍으라는 배려였을 것으로 장씨는 짐작했다.
이렇게 장씨는 50만장의 사진들을 찍었다. 그 중에서 노대통령이 생전에 본 것은 손녀의 입에 과자를 넣어줄듯 하다가 자신의 입에 넣는 장면을 찍은 4장의 연속사진 뿐이다. 장철영씨가 자신이 찍고도 너무 좋아 출력해 보여주자 노대통령은 "너무 좋다"며 이를 액자로 만들어 걸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1년간 청와대에 더 머물러야 했던 장씨를 두둔해 준 것도 노대통령이었다. 인수인계와 조금 더 돈을 벌어놓고 봉하로 가기 위해 남은 그를 다른 이들은 '배신자'라고 수근거렸지만, 노 대통령은 "남아있는 이들을 욕하지 마라. 대한민국에서 해야할 일이 남아서 있는 거다"고 말했다.
늦어도 3년 아니 딱 1년 후 봉하로 내려가 다시 사진을 찍겠다고 노대통령과 약속했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1년이 좀 넘어서 갑자기 들려온 서거 소식을 듣고서야 그는 봉하로 내려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봉하로 노 대통령의 시신이 담긴 관이 옮겨지는 장면을 울면서 찍었다.
◇"사진 보며 이런 분이 있었지 생각해 줬으면…"
장철영 씨가 카메라 앵글을 통해 바라보는 대통령이나 대선 주자들은 각각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소박한 느낌의 분"이라면서 "눈물 흘릴 때나 담배 필 때 자연스럽게 본모습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쌍꺼풀과 긴 속눈썹 때문에 눈이 여성스럽고 어떻게 찍어도 사진이 잘나오는 미남자형"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연예인 사진이라면 피부가 좋고 팽팽한 것이 좋은 것이지만 그 외에는 피부 주름도 인생의 깊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라면서 "올림머리하고 화장한 탱탱한 피부가 사진사에게는 도리어 밋밋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얼굴, 특히 눈의 비대칭(짝눈)이 심하다"면서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사진기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잘 알고 포즈를 잘 취해주는 등 정치인으로서 '쇼맨십'이 좋다"고 평가했다.
장 씨는 하지만 앵글 안에서 보여지는 모습 말고 앵글 밖 모습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은 진실도 담지만 거짓도 담는다. 연출이라는 것 자체가 왜곡"이라면서 "하지만 노대통령은 '연출사진(찍는 것)은 피곤하다'며 있는 그대로를 찍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또 "노 대통령은 사진을 찍기 전과 후가 똑같았다. 오히려 앵글 밖에서가 더하면 더했지 덜한 분이 아니었다"고 추억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책이 노 대통령을 다시 추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누가 옆에서 넘어지면 쫓아가 잡아주었습니다. 청와대에서도 기능직들이 일하면 다가가 '무슨 나무를 솎아내느냐' 묻곤 했습니다. 이 책과 사진을 통해 '이런 사람이 있었지'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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