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9와 .999999의 차이" 불화수소 '순도 경쟁'…표준기술이 돕다

표준연 '반도체 공정 진단 분야' 국가연구실 지정…국산 장비 성능 증명, 신뢰 확보
박현민 원장, "전주기 지원 통해 소부장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겠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가스분석표준그룹 연구진이 고순도 가스 순도분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2021.07.13 /뉴스1

(서울=뉴스1) 김승준 기자 = 정밀 공정에서 정확도·순도가 소수점 아래에 몇 개의 9가 붙느냐, 즉 99.99999%인지 99.9999999%인지에 따라 상품성이 갈리기도 한다. 일본 수출 규제의 이슈 중 하나는 소수점 아래의 순도 문제였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의 핵심 품목이었던 고순도 불화수소는 2020년 국산화에 성공했다. 발빠른 대응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숨은 조력이 있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13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연구성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지난 2년간 소부장 관련 분야에 대한 성과와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표준은 어떤 단위나 양 등을 정의하거나 보존·재현하기 위한 기준이다. 무언가를 측정하기 위한 방법과 기준이 합리적이고 정확해야, 실생활부터 정밀 공정, 무역에 이르기까지 원활히 이뤄진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자신이 생산한 제품의 순도가 99.999%라고 주장하더라도, 이를 검증할 표준이나 측정방법이 없거나 믿을 수 없으면 품질을 관리·증명·보증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표준·기준은 첨단 기술에 의해 정교해지기도 하지만, 정교한 표준·기준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기도 한다. 표준연은 이런 표준·기준·측정법을 연구·개발할 뿐 아니라 여기서 파생되는 기술을 활용해 산업체 지원을 하고 있다.

한국표준연구원의 오상협 책임연구원(왼쪽), SK머티리얼즈의 박치복 팀장이 기술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2021.07.13 /뉴스1

◇"우리 제품 믿고 쓸 수 있어요" 증명해주는 '측정·표준 기술'…불화수소 국산화에서 빛났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회로를 깎거나 세정에 쓰이는 핵심소재다. 10나노미터(nm·10억분의 1m) 이하의 정밀회로 제작일수록 정확도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99.9999% 이상의 초고순도가 필수다. 고순도 측정·분석을 하려면 미세한 차이를 검출해내는 정교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

표준연이 발 빠르게 산업체의 표준 기술 수요에 대응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의 기체 분석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브리핑에 나선 강상우 표준연 첨단측정장비 연구소장은 "국제적인 수준의 측정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전 세계 표준기관 참여하는 국제 비교에 12건 참여했고, 이 중 3건은 주관하기도 했다"며 "아시아 태평양 표준기관 비교에도 참여해 우수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가스 분석 표준 분야에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소개했다.

2020년 표준연은 가스 분석 표준 기술을 가지고 불화수소 순도 분석 장비·시설 구축에 나섰다. 생산 능력은 갖췄지만 제품의 품질 검증하는 문제가 걸림돌이었던 국내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믿을 수 있는 불화수소'를 만드는데 조력한 것이다.

강 연구소장은 "표준연의 가스분석표준그룹에는 반도체 순도분석시설, 가스 인증 표준물질 분석뿐 아니라 제조시설도 보유하고 있어 대부분의 가스 평가·인증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서 반도체 가스 분석용 표준 물질 개발 보급 등을 할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표준연과 기술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SK머티리얼즈 품질분석 담당 박치복 팀장은 "SK머티리얼즈는 생산과 판매에서 글로벌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세정용 특수가스 삼불화질소(NF3)와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육불화텅스텐(WF6), 세계 2위인 모노실란(SiH4)을 보유한 국내 소재 산업 선두주자"라며 "앞으로도 표준연과의 협업을 통해 반도체용 가스 소재의 품질을 향상시켜 고가치 소재 기술회사로 도약함과 동시에 국가 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라고 밝혔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반도체측정장비연구팀 연구진이 장비 핵심부품에 대한 성능검증 및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2021.07.13 /뉴스1

◇소재뿐 아니라 장비 성능 검증에도 쓰이는 '표준'…국산제품 신뢰도 확보 지원

표준연은 1999년부터 진공기술기반구축사업을 통해 진공측정 평가시스템을 마련해왔다. 2020년 표준연의 반도체측정장비팀은 '반도체 물성측정 공정진단' 분야 국가연구실(N-LAB)에 지정됐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사용되는 진공 장비는 오염 입자 제거에 직결되기 때문에 반도체 불량률을 낮추는 핵심적인 요소다. 반도체측정장비팀은 2019년 수출규제 문제가 발생한 이후 외산 장비와 국산 장비의 성능 비교 등을 수행해 국산 장비의 성능을 증명했다. 저진공 펌프, 플라스마·온도·불순물 등 공정 환경에 대한 모니터링 등 연평균 100건 이상의 성능평가를 수행하고,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부품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강상우 첨단측정장비연구소장은 "공정 중 측정과 공정 후 측정이 합쳐지면서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측정기술 도입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이를 실현하려면 핵심 측정장비의 원천기술 개발이 필요하며, 표준연도 더욱 적극적으로 기술개발에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표준연은 국산연구장비에 대한 연구자들의 인식개선과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지난 1월부터 '국산연구장비활용랩'을 개소해 운영 중이다. 국내 중소기업과 연구자들을 위해 무상으로 국산연구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한다. 또한, 측정표준기술 및 첨단장비개발기술을 활용해 유망 국산 연구장비의 성능평가 및 성능개선 프로그램도 연계할 계획이다.

박현민 표준연 원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측정표준·측정과학기술 역량과 인프라로 국산 장비 성능검증, 측정연구장비 개발, 맞춤형 인재양성까지 아우르는 전주기 지원을 통해 앞으로도 대한민국 소부장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겠다"라고 말했다.

seungjun24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