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주 52시간제 탓에 퇴근후에도 근무…노사 협의 맡겨야"

특별연장근로제 있지만 기업 현장에서 활용도 낮아
업계 "더 일하고 더 받길 원하는 노동자도 있다"

9월 10일(수) 국회의원회관에서 벤처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근로시간제도 유연화 정책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벤처기업협회 제공)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프로젝트 마감을 위해 주 52시간 근무를 초과할 경우 집에서 개인적으로 일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현재 근무시간 제도는 개발자 입장에서 자기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축소하는 것 같습니다."

AI 기반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는 개발자 A 씨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벤처·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근로시간제도 유연화 정책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릴 경우 추가 근무가 필요하지만 주 52시간 근무 제도 탓에 이를 초과하는 시간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A 씨를 비롯해 2명의 벤처·스타트업 현직 개발자, 스타트업 대표, 관련 협·단체 등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주 52시간 근무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촉구했다.

"특별연장근로제 있지만 신청·절차 까다롭고 부담"

업계에 따르면 A 씨와 같은 사례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연장근로제'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 사업장에서는 이를 적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연장근로제는 '업무 특수성이나 긴급 상황 시 주 52시간을 초과해 한시적으로 연장 근로를 허용하는 제도다.

벤처기업협회가 지난 3월 벤처기업 567개 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특별연장근로제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은 9.2%에 불과했다. 향후 활용할 계획이 있는 기업은 53.8%, 계획이 없는 기업은 37%로 나타났다.

주 52시간 근무를 초과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음에도 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지 않는 이유의 약 40%는 '근로자의 동의를 받기 어려움'(22.3%),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움'(18.2%)으로 꼽혔다.

기업 내 추가 연장근로 필요성이 없는 경우와 노동자의 장시간 근무 부담을 우려해 도입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제도를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인 셈이다.

특히 사전에 특별연장근로제를 신청해야 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보니 벤처·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갑자기 집중되는 업무를 예측할 수 없어 업계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에 한진선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정책과장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에는 사후 신청도 승인하고 있다"며 "연구개발직의 경우 3개월의 단위 기간을 적용해 총근로시간 내에서 단위 기간 내에 조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특별연장근로제를 도입하려는 기업 입장들은 관리·감독의 주체인 고용노동부에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신청하는 자체에 대해 부담을 느끼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 일하고 더 벌고 싶은 노동자도 있다…자발적 협의 존중 필요"

획일적인 주 52시간제도에 대한 기업의 애로도 많지만 초과 근무가 필요할 때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직장인들의 고민도 이어졌다.

A 씨는 대용량 바이오 데이터를 분석하는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주 52시간제도 탓에 개인 시간을 활용해 집에서 일을 마무리한다고 했다. 프로젝트 마감 기한에 맞춰 제한적인 근무 시간을 활용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다.

A 씨는 "현재 주 52시간 근로제도는 개발자 입장에서 봤을 때 자기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축소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강제성이 없고 근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있다면 (주 52시간제 개편은) 회사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근로자를 위한 제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성형 AI를 연구하는 B 씨는 "글로벌 최신 기술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논문을 읽는 데만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쏟는다"며 "이는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필수 과정인데 노동시간이 유연하지 못하면 몰입할 수 없고 도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회사와 노동자가 근무 시간을 자발적으로 협의하는 노동 구조가 마련돼야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혁신을 이어갈 수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한 가지 노동법으로 다양한 근무 형태를 아우르는 게 타당한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며 "경쟁력을 갖추려면 글로벌 표준을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미래가 어두울 수 있다. 자발적인 부분을 배려하는 정교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