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배급식 지원 필요없다" 말한 중소기업인

5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에서 회원국 대표단이 국내 뷰티기업 전시부스를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뉴스1) 장시온 기자

"어디 투자하고 싶냐고요? 솔직히 중국이죠"

운용자산이 120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투자회사 레전드캐피탈의 박준성 최고투자책임자가 지난 4일 제주에서 열린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 '벤처투자써밋'에서 한 말이다. 축제 같은 분위기의 장관회의를 취재하는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지난 4일부터 이틀간 제주에서 열린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는 우리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혁신기술과 제품을 선보이는 축제의 장이었다. 한국을 찾은 APEC 대표단과 해외투자자들 앞에 선 우리 중소기업, 스타트업인들은 저마다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APEC 대표단은 놀라워했다. 각국의 중소기업부 장관인 그들은 동네가게에서 시작해 9년 만에 미국 진출을 앞둔 K뷰티 기업부터 전 세계 빅테크가 뛰어든 생성형 AI 기술로 5년 만에 43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AI 스타트업까지, 우리 기업 대표들과 영어로 소통하며 해외 진출 성공 비결을 물어봤다. 자국 중소기업에 'K-중소기업'의 강점을 이식시키려는 듯 꼼꼼히 취재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K-뷰티와 로봇 등은 대표단에게 충분히 매력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성공'에 대한 기쁨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에 대한 우려가 한편에 있었다.

실제로 행사장에 모인 투자 전문가들은 "매력적인 투자시장이 어디냐"는 질문에 '중국'이라고 했다. 잉카인베스트먼트의 퀸튼 밴 네스 매니저는 "중국은 지정학적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혁신성이 있다"고 했고, 박준성 최고투자책임자는 "매년 200만 명의 엔지니어가 쏟아지는 나라"라며 "솔직히 나라면 중국에 투자한다"고 했다.

중국의 저력은 숫자로 들으면 그 차이가 더 와 닿는다. 중국은 매년 1200만 명의 대학 졸업생이 쏟아진다. 우리나라 인구 4분의 1이다. 그중 470만 명이 이공계다. 한국은 22만 명이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으로 들어올 인재풀이 이렇게나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혁신을 일구면 14억 명의 탄탄한 내수시장이 버티고 있다.

인력과 시장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은 해외로 나가야 생존이 가능하다. 폐기물처리기업을 창업해 잉카그룹의 투자를 받은 김근호 대표는 "주변의 모든 CEO가 사활을 걸고 글로벌 확장을 고민한다. 시장의 한계 때문"이라고 했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대표에게 우리 중소기업 정책의 방향성을 물었다. 한 대표는 "될 놈에게 몰아줘도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형평성은 배부른 소리"라면서 "될성부른 나무에 정책자금을 '몰빵'해야 한다"고 했다. 교수도 공무원도 아닌, 현장에서 구르는 기업인의 입에서 나온 제언이다.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 장관회의 중 처음으로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출범이라는 이니셔티브 채택도 이뤄졌다. 괄목할 만한 성과는 뒤로 하고, '생존'을 위해 정글 같은 타국으로 향하는 우리 기업인들의 처절함이 여운으로 남았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선별지원론'은 지난 몇십년 '보호'에 초점을 뒀던 우리 중소기업 정책의 기틀을 돌아보게 한다.

선별지원, 집중지원이 쉬운 것은 아니다.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자칫 특혜시비 논란도 우려된다. 그렇기에 국가는 그동안 '모두에게 골고루 조금씩' 나눠주는 배급형 지원책을 썼다. 사용한 누적 예산은 천문학적이지만 누구도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고 중소기업은 아직도 열악하기만 하다.

정책 지원도 혁신적인 변신이 필요할 때다.

zionwk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