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혁 관광공사 사장 "대한민국을 파는 조직, 과감히 110㎞ 밟아야"[인터뷰]
취임 6개월…글로벌 CEO 직접 만나고 성과형 MOU 도입
"관광공사 역할은 관광객 집계 아닌 산업 성장 견인"
-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서울=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 한국관광공사가 빨라졌다.
박성혁 사장이 지난해 12월 31일 임명, 올해 1월 7일 취임한 뒤 공사 안팎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다. 임원이 아닌 사장이 직접 글로벌 기업 CEO들과 마주 앉고, 사진 한 장 찍고 끝나던 업무협약(MOU)에는 모객 숫자가 박혔다. 공사 사상 처음으로 사장이 직접 단상에 올라 PT를 진행했고, 주말이면 사장 신분을 알리지 않은 채 지역 관광지를 둘러본다.
30년 넘게 글로벌 광고·마케팅 현장을 뛴 인물이 관광공사 사장이 됐다. 2년 가까이 비어 있던 자리였다. 관광 전문가도, 정치인도 아닌 제일기획 출신. 독일법인장·유럽총괄·북미총괄을 거쳐 글로벌부문장(부사장)까지 지낸 마케팅 베테랑이라는 점에 기대 섞인 시선도 있었지만, '광고와 관광은 결이 다른 영역 아니냐'는 의구심이 더 컸다.
그러나 취임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의구심은 점차 다른 평가로 바뀌고 있다. 관광업계 안팎에서 "관광공사 수장이 이렇게까지 현장을 뛰는 모습은 처음 본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사장 집무실에서 '현장형 CEO' 박성혁 사장을 만났다.
박 사장이 조직 문화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비유가 있다. 바로 '자동차 제한속도 100km' 이야기다.
그는 "민간 사기업은 제한속도가 100km라면 한 시간 뒤에 130km 지점까지 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무조건 가속이다."라며 "그러다 사고가 한번 터지면 크게 휘청이는 리스크를 안고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공사는 100km 제한속도면 90km쯤 와 있는 게 정상"이라면서 "가는 길에 국회도 챙겨야 하고 업계도 위로하며 가야 하니까. 공공기관의 특성상 이걸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가 관광공사에 요구하는 속도는 '110km'다. 박 사장은 "공사 입장에선 20km를 더 달리는 거고 사기업 기준으론 20km를 덜 달리는 것이다. 그 정도면 열정이 살짝 넘쳐도 딱지는 안 끊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어질리티(agility·기민함)'다"고 했다.
처음엔 공사 임원들의 당혹감과 반발도 있었다. 박 사장은 "한 임원이 '사장님은 저희를 제일기획 임원으로 아시는 것 같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더라"고 웃으며 "그런데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 지금은 다들 그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이 취임 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직원들이었다고 한다.
"솔직히 민간에 있을 때는 공기업이 그렇게 치열하게 일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워라밸 좋고 좀 낙랑한 조직이 아닐까 하는 오해가 있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달랐다. 급여가 높은 것도 아니고 승진 동기가 뚜렷한 것도 아닌데, 진짜 순수한 관광에 대한 열정으로 일하더라."
그래서 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공사는 지난해 정부 경영평가에서 'E등급'을 받았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사장 공백이 결정적이었다. 수장 부재 속에 외풍에 그대로 노출되며 조직 운영의 동력이 약해진 것이다.
박 사장은 "공공기관 중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상품을 세일즈하고 마케팅하는 유일한 기관이 한국관광공사다. 지난해 역대 최대 외래객을 유치했음에도 E등급을 받은 건 안타까운 일이다. 방패막이 없이 힘든 시기를 보낸 것 같다"고 짚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강조하는 핵심은 '협업'과 '효율'이다.
박 사장은 "공조직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존재한다. 부서 간, 본부 간 칸막이를 과감히 허무는 전사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실질적인 마케팅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효율에 대해서도 분명한 원칙을 세웠다. "진정한 효율은 직원이 보람을 느끼지 않거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낡은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성과가 높은 사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가치 있는 일로 채우는 효율'이다."
박 사장이 취임 후 바꾼 가시적이고 파격적인 변화는 기관 간 업무협약(MOU) 방식이다. 단순히 웃으며 사진 한 장 찍고 언론에 배포하고 끝나는 의례적 MOU 대신, 구체적인 '모객 숫자'와 '목표치'를 명시하도록 했다.
실제로 한 저비용항공사(LCC)와 맺은 협약에는 인바운드 탑승객 비중을 올해 25%, 내년 30%, 내후년 35%로 끌어올린다는 단계별 목표를 명기했다. 현재 비중이 11%인 점을 감안하면 도전적인 수치다. 또 다른 LCC와는 올해 30%, 내년 35%, 내후년 40%로 끌어올리는 구체적인 MOU를 체결했다.
일본 1·2위를 다투는 대형 여행사와의 인센티브 투어 업무 협약에도 명확한 모객 숫자가 들어갔다. 그 결과 해당 여행사 사장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회사 내부에 전사 협의체를 꾸리고 매달 실적 점검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박 사장은 "계약서에 숫자가 들어가니까 비로소 책임이 따른다"며 "처음엔 그 숫자를 안 넣으려고 했던 기업도 결국 한국에 외국인 관광객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와 동력이 생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은 해외 출장길에 오르면 실무진에 맡기지 않고 직접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난다. 임원 선에서 끝내던 과거 관행을 깨고 사장이 최전선에서 뛰는 이른바 'CEO 세일즈'다.
중국 출장에서는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 트립닷컴 부사장과 만나 협력 관계를 다졌고, 중국 최대 이커머스 기업 징동그룹 여행 부문 사장과도 담판을 지었다.
일본에서는 HIS 사장과 라쿠텐 여행부문 사장을, 대만에선 중화항공 CEO와 유명 호텔 원산 대반점 핵심 관계자를 잇달아 만났다. 글로벌 크루즈 선사 카니발 크루즈와 영국 버진애틀랜틱 CEO와도 직접 마주 앉아 방한 관광을 세일즈했다.
박 사장은 "관광공사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진과 소통이 뚫려야, 비로소 해외 지사가 그 회사의 임원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며 "그 위상과 채널이 위에서부터 정리돼야 밑에서 비즈니스가 힘 있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처럼 공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이유는 명쾌했다. "역대 다른 사장들과는 차별화된 행보가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실무진에게 '전임 사장들이 직접 상대 파트너 CEO와 세일즈 톡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나서게 됐다."
이러한 적극적인 소통 의지는 지난 2월 취임 기념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드러났다. 박 사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해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역사상 사장이 단상에 올라 직접 PT를 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임기 3년 중 첫 6개월을 쉼 없이 달려온 박 사장에게 어떤 사장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었다.
"임기 말 성과를 단순한 방한객 숫자만으로 평가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3000만 명 달성'이라는 국가적 목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한국 관광의 성장 구조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관광공사가 단순히 관광객 숫자를 세고 집계하는 행정 기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국 관광 산업의 판도를 움직이는 핵심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드는 것이 제 최종 목표입니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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