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개 '비밀 레시피'로 전기차·AI 공략…SK엔무브의 유체 기술

박성범 SK엔무브 연구소장 "점도만 낮춘다고 끝 아냐"
40년 윤활유 기술, AI 서버 식힌다…전기차·데이터센터 '열관리' 공략

박성범 SK이노베이션 에너지·화학기술연구소장 겸 에너지 세이빙 연구소장이 간담회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SK이노베이션 제공)/뉴스1

(대전=뉴스1) 황진중 기자

"전기차용 기능성 유체(플루이드)는 점도를 낮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어를 보호하면서 전기적 안정성과 열관리 성능까지 함께 확보해야 합니다."

박성범 SK엔무브 에너지 세이빙(Energy Saving) 연구소장은 지난 1일 대전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기차용 플루이드 연구 방향을 이같이 밝혔다.

SK엔무브는 내연기관용 윤활유에서 축적한 기술을 전기차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유체 개발로 연결하고 있다. 또 수십년간 쌓은 연구개발(R&D) 데이터에 AI와 시뮬레이션을 적용해 실제 시험 횟수를 줄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점도 낮춰도 기어 지켜야"…배합 기술로 난제 푼다

전기차용 플루이드는 모터와 감속기 등 구동계 부품의 마찰과 마모를 줄이고 전기적 안정성과 열관리 성능을 확보하기 위한 기능성 유체다.

박성범 연구소장에 따르면 개발 과정에서 풀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점도다. 점도를 낮추면 유체 저항이 줄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기어 사이를 보호하는 유막도 얇아진다.

박 연구소장은 "전기차용 플루이드는 점도를 낮출수록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유리하지만 너무 낮아지면 유막이 얇아져 기어에 스크래치가 날 수 있다"면서 "저점도를 유지하면서도 기어를 보호할 수 있도록 유막 형성과 금속 표면에서의 안정성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SK엔무브는 낮은 점도에서도 충분한 윤활성과 내마모성을 낼 수 있도록 배합을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R&D에는 고급 윤활기유인 그룹Ⅲ·그룹Ⅲ+ 시장에서 쌓은 기술력이 활용된다. 윤활기유는 윤활유의 핵심 원료로 같은 기유를 사용하더라도 첨가제의 종류와 배합에 따라 최종 제품 성능이 달라지는 소재다.

박 연구소장은 "원하는 물성을 가진 기유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기유와 첨가제를 조합해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배합식까지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구를 통해 SK엔무브는 고객과 제품별 요구 성능에 맞춘 500개 이상의 배합식을 확보하고 있다.

SK엔무브가 고급 윤활기유를 활용해 액침냉각 시장에 진출했다.(SK엔무브 제공)/뉴스1
전기차서 익힌 전기·열 기술…AI 데이터센터로

전기차용 플루이드에서 요구되는 전기적 안정성과 열관리 기술은 AI 데이터센터용 액침냉각유와 맞닿아 있다.

액침냉각은 서버를 절연성 냉각유에 직접 담가 열을 식히는 방식이다. 냉각유가 반도체와 전자부품에 직접 닿으므로 열을 빠르게 빼내면서도 오랜 기간 전기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 연구소장은 "데이터센터용 냉각유는 전자기기와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장기간 전기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용 플루이드에서 쌓은 배합 기술과 산화안정성 노하우를 활용하고 점도와 열전도도 등 열물성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K엔무브는 전기차용 플루이드에서 축적한 전기적 안정성·열관리 기술을 액침냉각유 개발에 적용하고 있다. 미국 서버업체를 통해 액침냉각용 플루이드 인증을 확보하고 관련 검증을 확대하고 있다.

박성범 SK이노베이션 에너지·화학기술연구소장 겸 에너지 세이빙 연구소장이 간담회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SK이노베이션 제공)/뉴스1
"파일럿 없인 상업공정 예측 못해"…40여년 데이터 AI에

새로운 원료나 촉매를 실제 공정에 적용하기 전에는 원하는 품질과 수율이 나오는지 파일럿 플랜트에서 먼저 검증한다. 상업공정에 바로 투입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다.

박 연구소장은 "파일럿이 없으면 실제 상업공정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다"면서 "SK엔무브는 1980년대 중반부터 파일럿 데이터와 상업공정 데이터를 계속 쌓아왔다"고 말했다.

파일럿에서 얻은 반응온도와 수율, 제품 특성을 실제 공장 데이터와 비교할 시 새로운 원료나 공정조건을 적용했을 때 생산 결과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다. 30여년간 두 데이터를 함께 축적한 경험이 SK엔무브의 R&D 자산으로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파일럿에서 가능한 조건을 모두 시험하는 대신 AI와 시뮬레이션으로 결과를 먼저 예측한 뒤 실제 검증이 필요한 조건을 추리는 방식이다.

박 연구소장은 "새로운 파일럿 설비를 계속 늘리기보다는 기존에 쌓은 데이터를 AI와 시뮬레이션에 활용하려고 한다"면서 "시뮬레이터로 결과를 먼저 예측해 실제 테스트 케이스를 줄이는 방향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