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 방울도 그냥 못 나간다…SK엔무브 윤활기유 '검증 또 검증'

시료 식히고 달군 뒤 마찰 시험…실험실 통과하면 파일럿 시험
공정 재현한 후 엔진 적용 연구…SK연구소서 30년 쌓은 R&D 경쟁력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전경.(SK이노베이션 제공)/뉴스1

(대전=뉴스1) 황진중 기자 = 지난 1일 오후 대전 유성구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에너지 세이빙 연구동 안으로 들어서자 투명한 액체가 담긴 작은 시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면 물처럼 보이지만 이는 윤활유 소재인 윤활기유다.

윤활기유는 엔진오일과 산업용 윤활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베이스 오일이다. 자동차 엔진과 산업기계의 마찰과 마모를 줄이고 열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필요한 핵심 소재다.

윤활기유 시료 한 방울이 실제 제품이 되기까지는 수차례 시험을 거쳐야 한다. SK엔무브가 30여 년간 윤활기유를 개발하며 반복해 온 연구개발(R&D) 과정이다. 연구동을 따라 이동하자 작은 시료 하나가 제품으로 바뀌는 순서가 눈앞에 이어졌다.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에너지 세이빙(Energy Saving) 연구소 연구원이 윤활기유 원료의 증류성상을 분석하고 있다.(SK이노베이션 제공)/뉴스1
차갑게 식혔다 250도까지…시료 한 방울의 첫 시험

첫 관문은 실험실이다. 연구원들은 윤활기유 시료의 점도를 40도와 100도에서 각각 측정했다. 온도가 달라져도 필요한 점도를 유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낮은 온도에서는 겨울철 시동 직후처럼 윤활유가 차가워졌을 때 얼마나 원활하게 움직이는지도 살폈다.

이번에는 시료가 250도 열 속으로 들어갔다. 연구원은 실험 조건에 따라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시료를 꺼내 양을 다시 측정해 얼마나 증발했는지를 살핀다고 설명했다. 시험 전후 양을 비교해 높은 온도에서 얼마나 증발했는지 확인한다.

열을 버텼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장비에서는 금속이 맞닿는 조건에서 윤활유가 마찰을 얼마나 낮추고 마모를 줄이는지를 측정한다.

한쪽에는 시험을 거쳐 산화되거나 부식된 금속 시편들이 진열돼 있었다. 연구원은 이런 변화를 비교해 윤활유의 산화 안정성과 부식 방지 성능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분석 실험실에서는 하나의 시료를 두고 온도를 바꾸고, 마찰을 가하고, 시간을 늘려가며 약점을 찾아내는 작업을 반복하며 연구 결과를 쌓고 있었다.

에너지 세이빙 분석 담당 연구원은 "윤활기유는 저온에서는 시동성을 확보해야 하고 고온에서는 윤활막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면서 "여러 온도와 조건에서 나온 시험 결과를 종합해 성능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연구원들이 물질 분석을 하고 있다.(SK이노베이션 제공)/뉴스1
실험실 다음은 '작은 공장'…파일럿서 공정 재현

실험실을 지나자 시험의 규모가 커졌다. 다음 관문인 파일럿은 연구실과 상업공장 사이에 놓인 '작은 공장'에 가깝다. 실험실에서 확인한 제조법이 생산 규모를 키웠을 때도 같은 결과를 내는지 살피는 곳이다.

에너지 세이빙 연구소 공정 담당 연구원은 작은 시험장비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생산 규모를 키웠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원료와 처리량이 달라지면 반응 조건과 수율, 제품 특성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파일럿에서는 원료와 촉매를 바꿔 넣고 온도와 압력 등 조건을 조정한다. 새로운 원료에서도 원하는 품질이 나오는지, 생산 규모를 늘렸을 때 수율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실험실에서 만든 '레시피'를 실제 공장에서 쓸 수 있는 제조법으로 다듬는 단계다. 원료가 바뀔 때마다 조건을 다시 맞추고 필요하면 고객사가 새 제품을 시험할 수 있도록 샘플도 만든다. 연구실에서 얻은 결과가 실제 생산기술로 넘어가는 연결 지점이다.

노경석 SK엔무브 기유기술팀장은 "고급 윤활기유 '유베이스'의 핵심 경쟁력은 원료 제조 기술과 독자적인 공정·촉매 기술, 30여 년간 축적한 배합 포트폴리오"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의 에너지 세이빙(Energy Saving) 연구소 연구원이 파일럿(Pilot) 시제품 제조를 위해 증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SK이노베이션 제공)/뉴스1
공정 검증 끝나면 성능 시험…마지막은 실제 엔진에서

파일럿을 지나면 시험의 질문도 달라진다. 이제는 '만들 수 있느냐'에서 '실제로 제대로 작동하느냐'로 넘어간다.

윤활기유에 첨가제를 배합해 만든 윤활유를 엔진과 각종 시험장비에 넣는다. 실험실에서 확인한 점도와 마찰 특성이 실제 엔진에서도 구현되는지, 장시간 작동해도 성능을 유지하는지를 다시 살핀다.

연구소에는 물리·화학 분석부터 벤치·리그·엔진·차량 동력계까지 이어지는 평가 설비가 갖춰져 있다. SK엔무브는 이런 개발과 검증을 거쳐 400개 이상의 라이선스 포뮬레이션을 확보했다.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에 맞춰 기유와 첨가제를 조합할 수 있도록 검증한 배합식이다.

시험대에 오르는 제품도 달라지고 있다. 자동차 엔진오일과 산업용 윤활유가 중심이던 시험 영역에 전기차용 기능성 유체가 들어왔다. 전기차에서는 모터와 감속기의 마찰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열을 얼마나 잘 빼내는지, 전기적 특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액침냉각 유체는 요구 조건이 또 다르다. 서버를 액체에 직접 담가 냉각하는 만큼 열은 빠르게 빼내면서 전기는 통하지 않아야 한다. 오래 사용해도 쉽게 산화하거나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

연구동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처음 봤던 투명한 시료가 달리 보였다. 차갑게 식혔다가 250도까지 가열하고 금속의 마찰과 마모를 얼마나 줄이는지 시험한다. 실험실을 통과한 시료는 파일럿에서 다시 공정 조건을 맞추고 마지막에는 실제 엔진과 장비에서 성능을 확인한다.

SK엔무브가 말하는 30여 년의 R&D 데이터는 이렇게 한 번의 시험이 다음 시험으로 이어지며 쌓여왔다. 실험실에서 시작한 윤활기유 한 방울이 제품이 되기까지, 그 사이를 채운 것은 '검증 또 검증'이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