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더 커지는 '성과 공유 요구' 기업들 진땀…고성장의 역설
노조, 영업익 15%·순이익 30% 요구…하청업체도 원청에 손 내밀어
"성과급, 국민이 함께 나눠야" 황당 주장까지…韓 기업들 골머리
- 박기호 기자, 신현우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신현우 기자
하이닉스가 어려웠을 때 산업은행을 통해 국세를 투입, 회생했는데 그렇다면 성과급도 국민이 함께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
최근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다.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회사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들이 빗발치는 성과 공유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동조합은 실적 호조의 과실을 직원들에게 더 나눠 달라고 요구한다.
심지어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을 한 만큼 국민과 나눠야 한다는 주장까지 난무하고 있다. 특히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업 유치를 통해 향후 성과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겠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들은 남모를 속앓이를 하고 있지만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이른바 '고성장의 역설'에 직면한 셈이다.
21일 경제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는 노조와의 임금협상 및 단체협약(임단협)에 난항을 겪고 있다. 노조는 사측과의 추가 임단협에서 영업이익의 20%를 요구했다가 현재는 15%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부문에서 이룬 성장 과실을 나눠야 한다는 주장인데 올해 반도체 사업부의 영업이익 전망치가 270조 원인 것을 감안하면 20%는 54조 원에 달한다. 노조가 양보했다고 주장하는 영업익 15% 규모의 성과급 역시 40조 원 수준이다.
결국 사측과 노조는 추가 임단협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노조는 오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노조는 18일간의 총파업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가 최대 30조 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현대자동차(005380) 노조는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연간 순이익은 10조 3648억 원이다. 노조가 요구한 지난해 순이익의 30%를 단순히 계산하면 3조 원을 웃도는 규모다.
성과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규모다. 기업의 이익은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 주주 환원 등의 재원이 된다. 직원들에게 더 많은 성과급을 주고 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부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주도권 다툼 등 사활을 건 기술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노조가 거액의 성과급만을 요구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생떼"라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조선업 하청 노조에서도 원청과 동일한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HD현대중공업(329180)의 하청지회에서는 원청과 동일한 비율의 성과급 지급 및 명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원하청 성과급이 동일 금액으로 지급되면 회사의 지출 규모가 대폭 증가할 전망이다. 한화오션(042660)의 경우 급식, 통근버스 운영, 시설관리 등을 맡고 있는 웰리브지회가 교섭 대상에 추가될 경우 성과급 등 교섭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심지어 전 국민이 성과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하이닉스 성과급은 왜 하이닉스(직원)만 받느냐"며 "하이닉스가 어려웠을 때 산업은행을 통해 국세를 투입, 회생했는데 그렇다면 성과급도 국민이 함께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국 기업 가운데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은 기업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논리라면 사실상 모든 기업의 성과는 국민과 함께 공유해야 하는 셈이다.
또 다른 글에선 현재 반도체 기업들의 성장에 대해 "대기업이 혼자 이룬 성과가 아니라 국민이 함께 만든 결과"라며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성과급을 지역화폐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황당한 주장에 "성과를 나누려면 주식을 사서 주주가 돼야 한다"거나 "재산권을 침해하자는 비현실적인 요구"라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기업들은 어떤 식으로 여론이 흘러갈지 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실제 성과급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해 지역 정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한 청주시의원은 시의회 본회의에서 "SK하이닉스, LG화학, LS일렉트릭 등 기업의 성장과 달리 지역 내 자영업과 소상공인 중심의 민생경제는 여전히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성과급과 복지포인트를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계에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직원들의 거주지가 다양할 텐데 그것을 어떻게 다 나눠서 줄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기업의 낙수효과를 특정 지역이 아닌 국내 전반에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6.3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기업들의 성과를 향유하기 위한 주장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요즘 다소 조용하기는 하지만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이전론은 언제든지 다시 부상할 수 있어 관련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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