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2년, 삼성전자 반도체 위상 회복…파운드리까지 날개

위기감 고조되자 발휘된 독한 삼성인 저력…이재용 회장 직접 영업
최우수 평가 받은 HBM4…메모리 사업부, 4분기 역대 최대 실적 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경기도 기흥캠퍼스 반도체(DS부문) 차세대 연구개발(R&D) 단지인 'NRD-K'를 방문해 차세대 제품 및 기술 경쟁력을 점검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2025.12.22/뉴스1 ⓒ News1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삼성전자(005930)가 2년 가까이 절치부심한 끝에 반도체 사업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며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물론 파운드리(위탁 생산)까지 고객 확보에 성공했다.

'독한 삼성인'이라는 삼성 특유의 저력이 위기를 기회로 바꿨고 이재용 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 직접 영업에 나서 성과를 거뒀다. 반도체 사업 부문의 수장까지 교체하면서 조직 내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 역시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는 지적이다.

위기에 강한 독한 삼성인…위기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 살렸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의 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스템LSI 부문 등이 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분기 DS 부문 매출은 33조 1000억 원, 영업이익은 7조 원을 달성하며 분기 최대 메모리 매출을 이뤄냈다. 삼성전자 DS 부문의 핵심인 메모리 사업부는 올해 4분기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삼성전자 앞에는 '위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HBM 개발에 실기한 결과 33년간 수성했던 글로벌 D램 시장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넘겨줬다. 삼성전자 관계자들 사이에서 '충격' '굴욕'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도 상당했다.

실적 역시 최악이었다. 삼성전자 DS 부문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4000억 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6조 4500억 원) 대비 93.8% 감소한 것으로 2023년 4분기 2조 18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후 가장 처참한 성적표였다.

하지만 '삼성다움'이라는 경영 철학이 삼성전자 DS 부문을 살렸다.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는 삼성 특유의 저력이 발동했다.

이 회장부터 뛰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테슬라와 총 22조 7648억 원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수주액은 삼성전자 역사를 통틀어 최고액으로 삼성전자가 수주 공시(단일판매·공급계약체결)를 띄운 것도 이번이 사상 처음이었다. 작년 5월 DS 부문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영현 부회장의 전략도 큰 힘이 됐다. 전 부회장은 경쟁력 회복 작업을 주력했고 HBM3E 성능 개선을 위한 D램 재설계도 지시했다.

지난 22일 이뤄진 이 회장의 반도체 사업장 방문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신호탄이다. 이 회장은 경기도 기흥캠퍼스와 화성캠퍼스를 찾아 "과감한 혁신과 투자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자"고 밝혔다. 이 회장이 기흥캠퍼스 내 DS 부문 차세대 연구개발(R&D) 단지인 NRD-K를 공개적으로 찾은 것은 2023년 10월 이후 2년 2개월 만이다.

재계에선 이 회장의 메시지에 '반도체 부활'에 대한 자신감이 들어가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올해 초에만 하더라도 '사즉생(死卽生)' '독한 삼성'을 언급, 혁신을 촉구했다면 이제는 기술 혁신을 통한 '왕좌의 복원'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분기 매출과 함께 12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 86조617억원, 영업이익 12조1661억원을 기록했다고 30일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8.8%, 32.5% 증가했고 매출은 사상 처음 80조원을 넘어섰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2025.10.3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HBM4 샘플 출하…대형 고객사와 파운드리 협력 '속도'

실제 삼성전자 DS 부문의 최근 기술 경쟁력은 상당 부분 회복한 모습이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경우 글로벌 고객사에 HBM3E를 공급 중이다. 또한 기존 5세대(1b) 대비 촘촘한 회로 선폭과 높은 집적도가 필요한 6세대인 1c 나노 공정의 모제품과 HBM 양산 전환 승인을 완료하고 이를 기반으로 HBM4 개발을 완료, 주요 고객사에 샘플(CS)도 출하했다. 삼성전자의 HBM4는 엔비디아의 테스트 결과 구동 속도, 전력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고객사와는 내년 공급 물량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차세대 메모리 제품도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개발한 고성능 그래픽 D램인 LPDDR(저전력더블데이터레이트) 기반의 차세대 저전력 AI 서버용 모듈 SOCAMM2도 현재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고 있다. SOCAMM2는 개발 초기부터 엔비디아와 긴밀하게 협력, 경쟁사 대비 빠르게 CS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12나노미터(㎚)급 40Gbps 24Gb GDDR7 D램은 기술력과 혁신성을 인정받으며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GDDR7은 HBM 대비 전력과 비용 효율이 높아 인공지능(AI) 추론이 급격히 확산하는 상황에서 핵심 제품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와 반도체연구소 소속 연구진이 참여해 규명한 초저전력 낸드플래시 기술이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되면서 기술적 완성도와 혁신성도 인정받았다.

파운드리 시장에선 대만 TSMC가 독주 체제를 이어가고 있지만 삼성전자 역시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지난 3분기 선단 공정 중심으로 최대 수주 실적을 달성하는 등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전력 효율을 높이는 공정인 GAA(게이트 올 어라운드) 구조 트랜지스터를 적용한 2나노 1세대 제품 양산을 시작하면서 선단 공정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지난 7월 테슬라와 역대 최대 규모의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업계에선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퀄컴, AMD 등 대형 고객사와 협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선단 공정뿐 아니라 성숙 공정에서도 연이어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 8월 삼성 오스틴 공장에서 칩을 생산할 것이라 밝혔고 엔비디아가 설계한 닌텐도 스위치2 프로세서 또한 삼성 8나노 공정을 통해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IBM은 삼성 5·7나노 공정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밝히는 등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차세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2600을 공식 출시했다.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2600은 업계 최초로 2nm GAA 공정을 적용한 모바일 AP로, 전작(엑시노스 2500) 대비 중앙처리장치(CPU) 성능은 39%, 신경망처리장치(NPU)의 생성형 AI 성능은 113%를 향상됐다. 모바일 SoC(시스템 온 칩) 최초로 히트패스블록(HPB)을 도입, 열 저항을 최대 16% 개선하면서 안정적인 성능을 구현하도록 했다. 엑시노스 2600은 갤럭시 S26 시리즈에 탑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스템LSI 사업부의 실적 개선도 예상된다.

업계 최초로 가장 작은 0.5㎛ 픽셀을 적용한 2억 화소 이미지센서인 '아이소셀 HP5'를 통한 시장 점유율 확대도 기대된다. 현재 삼성전자 오스틴 팹(Fab)에선 전력 효율성과 최적화된 성능을 제공하는 이미지센서도 개발 중이며, 추후 애플 제품에 탑재될 예정이다.

기술 경쟁력을 회복한 삼성전자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전 부회장은 올해 창립 56주년 기념식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기술의 본질과 품질의 완성도에 집중해 근원적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근 사장단 인사 직후에는 DS 부문 임직원 대상 내부 행사에서도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작업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의 초격차를 회복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말자는 뜻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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