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美 제련소, '팍스 실리카' 교두보…제2 마스가 급부상
'반도체 생산 필수' 희소광물 제공…"경제안보 동맹 상징"
'기술 유출·재무 리스크'에 '지분 확보' 우려 해소 과제
- 박종홍 기자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고려아연(010130)이 11조 원 규모의 미국 현지 제련소 건설에 나서면서 전략광물 공급망을 둘러싼 한미 양국 간 협력이 자원 동맹 수준으로 격상될 전기를 마련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핵심 전략광물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미국 정부가 직접 참여하는 이례적 사례로 꼽히기 때문이다.
또 미국뿐 아니라 한국 정부와도 사전 교감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미 조선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이어 전략적 산업 협력의 상징적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에는 고려아연과 함께 미국 정부와 현지 투자자가 19억 4000만 달러(약 2조 8600억 원)를 출자해 합작법인 크루시블 JV를 설립하는 형태로 직접 참여한다.
출자금 중 고려아연 비중은 8999만 9000만 달러(약 1320억 원)로 나머지 대부분 금액은 미국 측에서 출자한다. JV의 최대주주도 40.1% 지분을 확보할 미국 전쟁부(국방부)다.
JV 출자금은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고려아연으로 넘어가며, JV는 고려아연 유증을 통해 발행된 신주를 확보한다. 고려아연은 확보한 출자금에 미국 정책금융 지원 대출 및 재무적 투자자 대출, 미 상무부 보조금 등을 더해 74억 3200만 달러(약 10조 9900억 원)를 제련소 건설에 투입한다.
고려아연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기회라는 점에서, 미국은 전략광물 공급망을 재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전략 광물 위협에 대응할 카드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반도체(실리콘) 기술력을 장악해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팍스 실리카 구상과도 상통한다. 고려아연이 생산할 전략광물 중 게르마늄, 갈륨, 인듐, 안티모니 등은 반도체 생산 공정에 있어서 필수적 광물로 꼽힌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도 이번 투자는 미국의 핵심 구상 인 팍스 실리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회사 위상을 높일 기회란 평가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 상무부와 전쟁부의 직접적인 지원과 참여는 이 프로젝트가 단순 민간 투자를 넘어선 한미 경제 안보 동맹의 상징적 자산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며 "기존 기업 투자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지점은 미 정부의 깊숙한 관여"라고 밝혔다.
이정우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생산 예정 광물인 아연, 연, 구리, 은, 금과 안티모니를 비롯한 희소금속은 미국의 수입 의존도가 대부분 높은 편이라 현지 판매는 원활할 전망"이라며 "데이터센터, AI, 방위산업에 필요한 원재료들이라 전략광물 밸류체인 다변화를 추진하는 미국 니즈와도 합치된다"고 평가했다.
이번 투자는 한미 정부 간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할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경주 APEC 2025 당시 양국이 합의한 한국의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활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7일 기자 간담회에서 "구체적 투자 방안이나 (펀드를) 활용하는 부분에 대해선 미국 상무부와 논의할 주제"라고 밝혔다. 또한 "고려아연 공장 설립은 지난 8월 이미 공감대가 있었다"며 양국 간 사전 논의가 있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펀드 활용 외 '국가핵심기술 수출'도 양국 간 협의 과제로 꼽힌다. 고려아연은 정부가 선정한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 현지 제련소에 해당 기술을 적용할 경우 산업통상부의 승인이 필수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은 프로젝트의 잠재적 리스크로 꼽힌다. 고려아연은 미 정부나 투자자가 JV를 소유하고 현지 제련소는 고려아연이 소유하는 구조라 기술 유출 우려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미 정부가 제련소 지분 일부를 확보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아연이 부담하는 재무적 리스크가 체급 대비 과도하다는 점 역시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힌다. 이번 투자로 고려아연은 미 전쟁부에 4조 4085억 원을 비롯해 총 8조 3909억 원의 빚보증을 제공하는데, 자기 자본 7조 6000억 원을 상회해 리스크가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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