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제조업 버팀목' 철강, '탄소저감·해외진출·스페셜티 확보' 숙제

[제조업 르네상스]⑦ 단기 '전기로' 장기 '수소환원'으로 탄소↓
美·印 진출 사활…고망간강·차세대강판 등 고부가 제품 전면에

편집자주 ...인공지능(AI) 시대와 미중 무역 갈등이 한국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AI 구현을 위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특수를 누리고 있다. 또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소형모듈원자로(SMR)와 변압기, 전선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도 슈퍼사이클(초호황)에 진입했다. 특히 미국이 중국산 제품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면서 기술력과 신뢰성이 보장된 한국 제조업으로 특수가 쏠리고 있다. 디지털의 정점인 AI가 ‘아날로그’ 제조업 부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조선, 전기·전력기기, 방산,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우리나라의 핵심 제조업의 강점을 집중 조명해 본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2025.7.31/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1. 액화천연가스(LNG) 시장 확대로 K-조선의 LNG 운반선 수주가 늘어났지만 LNG 탱크 설계 기술은 프랑스 GTT사(Membrane Type)에, 탱크 소재인 니켈강은 일본에 의존해야 했다. 포스코는 니켈강을 대체할 소재 개발에 착수해 LNG 탱크에 사용할 수 있는 신소재인 고망간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니켈보다 가격도 싸고 구하기도 용이한 망간을 이용했기에 더 저렴하면서도 성능도 우수하다.

#2. 현대제철은 10여 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3세대 자동차 강판을 올해 6월부터 상용화했다. 일반적으로 강판은 강도가 높아질수록 성형이 힘들어져 다양한 디자인을 구현하기 어렵다. 현대제철이 개발한 3세대 자동차 강판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한다. 이 강판으로 내부 뼈대를 만들면 사고 시 차체가 부러지지 않고 구겨져 충돌 에너지를 흡수, 탑승자를 보다 안전하게 한다.

조선과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K-철강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등 지정학적 긴장이 확대되면서 공급망 불안이 커지고 있어 K-철강의 중요성 또한 재조명받고 있다. 기업이 원하는 어떤 철강 제품도 국내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급망 불안을 비켜 갈 수 있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조업 부흥을 외치면서 철강 산업 재건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철강업계가 마주한 환경은 마냥 녹록지는 않다. 내년부터 강화할 탄소배출 규제에 대비해야 하고, 지정학적 긴장이 촉발한 무역장벽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중국발 저가 물량 공세에 대응할 K-철강만의 스페셜티 제품도 확보해야 한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모습. 2019.2.21/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고망간강, 차세대 강판으로 경쟁력↑…美 현지생산, '고성장' 인도 투자로 돌파구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철강은 일본·중국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고품질 스페셜티 제품 개발에 주력해 왔다. 포스코의 고망간강과 현대제철의 3세대 자동차 강판이 대표 사례다.

먼저 포스코는 2000년대 중반 일본의 니켈강 대체재 개발에 착수했다. 2014년 세계 최초로 고망간강의 상용화 인증을 받았다. 고망간강은 극저온 환경에서도 뛰어난 인성과 강도를 갖춘 것은 물론 용접과 성형이 쉬워 대형 LNG 저장 탱크 제작에 유리하다.

특히 고망간강은 니켈강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조선 업계에서는 대형 LNG선에 고망간강을 적용하면 니켈강 사용 때보다 약 70억~90억 원의 원가가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현대제철은 3세대 강판을 앞세워 현재 20% 수준인 자동차 강판의 글로벌 판매 비중을 최대 4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미국에 자동차 강판 가공센터인 조지아 SSC(스틸서비스센터)를 가동했고, 인도에도 푸네 SSC를 착공했다.

갈수록 높아지는 '무역 장벽'을 돌파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미국의 철강 50% 품목 관세에 대응해 58억 달러(약 8조 원)를 들여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일관제철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프로젝트에 지분 참여를 검토하는 한편, 미국 2위 제철소인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에 대한 지분 투자도 저울질하고 있다. 고성장이 예상되는 인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JSW그룹과 손잡고 현지 제철소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및 제4차 계획기간 배출권 할당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2025.11.10/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포스코·현대제철, 내년 전기로 통해 최대 500만 톤 탄소 감축

K-철강이 직면한 또 다른 과제는 '탄소 저감'이다. 업계에 따르면 2026~2035년 10년간 국내 철강업계가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인증서 구매에 부담해야 할 비용은 최소 3조 원으로 추산된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제품에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로, 수출 기업은 정량 이상의 탄소 배출분에 대해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이에 철강업계는 탄소 감축 방안 수립을 보다 서두르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정부 발표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강화한 점도 철강업계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철강사들은 당장 내년부터 전기로 사용 비율을 높이며 탄소 배출을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전기로는 기존 고로(용광로) 대비 탄소 배출을 약 70% 이상 줄일 수 있다.

포스코는 내년부터 광양제철소에서 연산 250만 톤 규모의 전기로를 가동할 예정이다. 지난해 초 6000억 원을 투자해 착공한 시설로, 포스코는 이를 통해 연간 350만 톤의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대제철(004020) 역시 내년부터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의 상업 생산을 개시할 계획이다. 당진제철소에 약 1500억 원을 들여 구축하는 설비로 전기로의 철스크랩에 일반 고로에서 생산한 쇳물을 혼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현대제철은 2020년 가동을 중단했던 당진제철소의 박판열연 공장에 해당 프로세스를 적용해 탄소 저감 자동차 강판 공장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기존 제품 대비 탄소를 20% 정도 줄인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할 것으로 기대한다.

BNK투자증권에 따르면 현대제철의 경우 유휴 전기로를 전체 가동해 복합 프로세스를 진행하면 이론상 150만 톤의 탄소를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까지 더하면 철강 '빅2'가 내년도 줄일 수 있는 탄소는 최대 500만 톤에 이른다.

수소환원제철 제조 공정 비교(포스코 제공)
수소환원 통해 탄소 '제로'…수소·친환경에너지 비용 '숙제'

단기적 탄소 감축 방안이 전기로라면 장기적 방안은 수소환원제철이다.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환원)하기 위해 사용하는 환원제로 기존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면 이론적으로 철강 1톤 생산 시 2톤씩 배출되던 탄소를 없앨 수 있다.

포스코는 독자 개발 중인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HyREX) 공법을 적용한 연산 30만 톤 규모의 데모 플랜트를 내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또 100만 톤 규모 상용화 설비를 2030년까지 도입하고 점차 기존 고로를 대체하며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목표다.

현대제철도 하이큐브(Hy-Cube)라는 독자적인 생산체계를 통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40%까지 줄인 철강재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기로에 철스크랩과 고로의 쇳물뿐 아니라 수소환원철까지 혼합해 탄소 배출량을 더 낮춘다는 것이다.

화력 기반의 고로가 전기로로 대체돼 전력 사용량이 증가하는 만큼 신재생에너지 확보도 필수적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전력을 포항제철소에 공급하기 위해 경상북도·경주시와 경주 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협력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8000억 원을 투자, 2028년 준공을 목표로 당진제철소에 액화천연가스(LNG) 자가발전 설비를 짓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은 '비용'이다. 업계에선 그린 수소 가격이 킬로그램(㎏)당 1달러(약 1400원) 수준은 돼야 수소환원제철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내 그린수소 생산 단가는 킬로그램당 1만 원을 훌쩍 넘는다. 제철소 가동에 필요한 전력 모두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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