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르네상스]② K-조선, LNG·마스가로 中 추격 따돌린다

AI·로봇 더한 '스마트 조선소'…"생산성 향상 기대"
"마스가 계기 조선업 중요성 입증…생태계 살려야"

편집자주 ...인공지능(AI) 시대와 미중 무역 갈등이 한국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AI 구현을 위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특수를 누리고 있다. 또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소형모듈원자로(SMR)와 변압기, 전선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도 슈퍼사이클(초호황)에 진입했다. 특히 미국이 중국산 제품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면서 기술력과 신뢰성이 보장된 한국 제조업으로 특수가 쏠리고 있다. 디지털의 정점인 AI가 ‘아날로그’ 제조업 부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조선, 전기·전력기기, 방산,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우리나라의 핵심 제조업의 강점을 집중 조명해 본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제작한 '마스가(MASGA)' 문구가 쓰인 빨간 모자. 2025.8.3/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중국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던 K-조선이 새로운 도약 전기를 마련했다. 기술력이 중요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요가 급증하면서 선주사들이 K-조선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조선·해양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가 본격 가동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지정학적 위기가 계속되면서 군함 등 방산 수요가 늘어난 것도 호재다.

HD현대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K-조선 빅3는 인공지능(AI), 디지털 트윈, 원격·자율운항 기술까지 적극 도입하며 '조선업 르네상스'를 이끈다는 방침이다.

LNG선 사실상 '독점' 내년 77척 발주 전망…'마스가' 새 먹거리 확보

사실 올해는 글로벌 선박 발주가 주춤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LNG운반선과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선종 위주로 수주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수주를 보였다는 평가다.

2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3분기 3사의 수주잔고는 135조 4439억 원에 이른다. 1분기 합산 잔고 147조 3999억 원과 비교하면 8.1% 하락한 수치다. 이는 수주가 줄어든 영향보다는 생산성 향상으로 선박 인도가 늘어난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주잔고 감소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올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운반선 18척 가운데 16척을 한국이 수주했다. 나머지 2척은 미국으로 갔으나, 한화오션 자회사 필리조선소가 건조를 맡는다. 2023년 64척, 2024년 76척에 비하면 발주 자체가 크게 줄었지만 한국의 점유율은 사실상 독점 수준이라는 평가다.

증권가에선 내년 LNG선 시장의 회복과 함께 '한국 독주'를 전망한다. 올해에만 7050만 톤 규모의 LNG 프로젝트가 일제히 최종투자결정(FID)을 확정한 덕분이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6년 LNG선 예상 발주량은 77척으로 전망되며, 한국 조선사에서 총 72척을 수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마스가라는 호재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이 전 세계 선박의 60~70%를 수주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상선 건조 역량을 상실했고, 기존 해군 함정을 수리할 조선소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이대로면 해양 패권을 중국에 내줄 수밖에 없다는 게 트럼프 정부의 판단이다.

이런 고민의 산물이 바로 '마스가'다. 마스가의 핵심 파트너가 바로 'K-조선'이다. 한미 관세협상 세부 합의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양국이 조선산업 협의체를 통해 정비·훈련·조선소 현대화·공급망 복원을 추진하고, 미국은 한국 내 미군 및 상선 건조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내용 등이 명시됐다.

마스가 출발점은 유지·보수·운영(MRO) 사업이 될 전망이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8월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인 '윌리 쉬라함'을 시작으로 지난해 11월에는 '유콘함', 올해 7월에는 '찰스 드류함'까지 국내 조선소 최초이자 최다 MRO 사업 실적을 보유 중이다.

HD현대중공업도 최근 미국 해군 7함대 소속 화물 보급함인 'USNS 앨런 셰퍼드함'의 정기 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미 해군 측도 한국 기업의 조선·MRO 역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전언이다.

여기에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는 미 전투함정이 한국에서 최초로 MRO를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함정 건조까지 협력 범위가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미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는 합병을, 삼성중공업은 운휴도크를 재가동하고 글로벌 생산기지 전략을, 한화오션은 플로팅도크와 크레인 투자, 해외업체 인수 등의 각자도생 성장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HD현대의 AI 기반 운항 설루션 '오션와이즈' 이미지. (HD현대 제공)
AI·디지털트윈·로봇…조선소는 '스마트 공장'으로 변신 중

국내 조선소는 고부가 선박 수주 확대와 마스가에 힘입어 AI·자동화 기반 '스마트 조선소'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령화 등으로 인해 인력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피지컬 AI, 로봇 등을 대안으로 점찍은 것이다.

우선 HD현대는 미국 방산 AI 기업 팔란티어와 협력해 2030년까지 '미래형 조선소'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선박 건조 생산성을 30% 높이고, 건조 기간도 30% 단축한다는 목표다. 현재 1단계인 '눈에 보이는 조선소'를 구축했다.

AI 기반의 용접 자동화 또한 진행 중이다. 최신 AI 및 비전 센싱 기술 등을 활용해 로봇이 도면정보에서 용접선을 자동 추출하고 부재의 위치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용접하는 것이다. HD현대는 선박 블록 제작 공정 중 소조립과 패널 조립에 협동로봇과 산업용 로봇 기반의 용접 자동화 시스템을 다양한 용접 공정에 지속적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아예 그룹 AI 기능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조직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룹 차원의 일관된 AI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전 사업 분야에 AI 기술을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오션은 2021년 업계 최초로 '디지털 생산센터'를 설립해 스마트 조선소를 고도화하고 있다. 조선소의 관제탑인 디지털 생산센터의 생산관리센터는 드론과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해 적치 공간을 찾아낸 뒤 최적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고 시운전센터는 IoT를 기반으로 해상에서 시운전 중인 선박을 원격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드론과 AI 기술을 활용한 흘수(수면 아래 선박이 물에 잠기는 부분) 계측 시스템도 사용 중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계측하면 오차범위가 실제 사람이 계측한 값 대비 ± 1㎝에 불과해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작업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조선해양업계 최초의 자동화 플랫폼 'S-EDP'를 공개했다. 디지털화된 정보가 자동으로 저장·공유되는 이 플랫폼을 통해 웹 기반 동시 접근과 대내외 실시간 협업, 도면·문서·계산서 자동 작성 기능을 제공해 설계 기간을 크게 줄일 것이란 기대다. 이를 기반으로 설계 자동화율을 2030년까지 2배 이상 끌어올릴 것이란 계획이다.

조선업 특화 로봇 개발에도 나섰다.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협동로봇을 기반으로 한 'AI탑재 용접 로봇' 개발을 시작으로 이동형 양팔로봇, 4족 로봇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한다.

"조선업, 전략산업 입증…中과 경쟁 위해 지원 필요"

한국 조선업이 세계 시장에서 재도약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과제도 적지 않다.

전 세계 조선 수주량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 이미 조선업을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 만큼, 한국도 조선업 대상 연구개발 투자금액, 세액공제 등의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기술 초격차만이 살길인 만큼 LNG, 암모니아, 메탄올, 수소 등 차세대 연료 추진선 기술을 확보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윤현규 국립 창원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이번 한미 관세협상 계기에 조선업의 중요성이 입증된 만큼 전략산업으로의 필요성이 더 많아졌다"면서 "또한 업계 생태계를 위해 빅3 조선소 외에 중형 조선소들에 선박 금융 등의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 생산 현장에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향상하거나 선박에 AI 기반의 설루션을 탑재해 안전성과 운항 효율 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자율운항 선박 국제표준이 한국 산업계에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으로도 관련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등 지원을 이어가 주면 좋겠다"고 했다.

flyhighro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