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허비말라" 정부 경고…석화업계, 복잡한 셈법 '진통'
구윤철 부총리 "진정성 의구심…먼저 하는 기업에 빠른 지원"
대산산단, 초안 제출…여수·울산, 얽힌 이해관계 지지부진
- 박주평 기자
(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말라"
정부가 석유화학업계를 향해 또 다시 구조재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먼저 재편을 추진하는 산단, 기업에 더 빠른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당근'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석유화학업체들이 당장 문을 닫아야 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보니 구조개편에 미온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울산·대산·여수 화학단지 내 주요 기업들은 지난 8월 체결한 사업재편 자율협약에 따라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 능력의 18~25%(270만~370만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자율협약을 체결한 10개 기업은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006650), 에쓰오일(010950)(이상 울산) △LG화학(051910), GS칼텍스, 여천NCC(한화솔루션-DL케미칼 합작)(이상 여수) △롯데케미칼(011170), HD현대케미칼(이상 대산)이다.
하지만 사업재편안 제출이 지연되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4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일부 산단과 기업의 사업재편이 여전히 지지부진해 업계 진정성에 시장의 의구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업계가 이번 골든타임을 허비한다면 정부와 채권금융기관도 조력자로만 남기는 힘들 것"이라고 경고 수위를 높였다.
이어 "먼저 사업재편을 추진하는 산단·기업에는 더 빠른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구 부총리의 '일부 산단과 기업' 언급은 산단별 차이가 나는 사업재편안 진척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대산산단에 위치한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구조개편 초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했다. HD현대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가 60%, 롯데케미칼이 40%를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JV)이다.
롯데케미칼이 대산 공장의 NCC 등을 현물출자 방식으로 HD현대케미칼에 이전해 설비를 통합하고, HD현대케미칼은 현금 출자를 통해 합작사를 세우는 방식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회사 간 기존 합작법인 설립 및 운영 경험이 있어 신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는 다른 산단에 비해 협의가 원만한 것으로 보인다. 설비의 적정 가치 평가, 인력 재배치 등은 여전히 민감한 문제다.
여수 산단에서는 LG화학이 GS칼텍스와 NCC 통합운영 등 협업 모델을 논의 중이다. 정유사가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를 내부 거래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하면 원가 절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설비 가치평가 등 논의할 사안이 많다.
LG화학은 지난달 31일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국내 정유사와 협업 모델을 발굴하는 등 상호 시너지 창출 방안을 치열하게 논의 중"이라며 "이를 통해 원료 구매 경쟁력 강화와 비용 절감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논의 결과에 따라 일부 설비 감축 효과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천NCC 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이미 여천NCC 유동성 공급을 두고 심각한 갈등을 겪은 바 있고, 설비 감축 논의도 더딘 상황이다. 여천NCC는 정유사와 협력하는 다른 NCC에 비해 나프타의 안정적 수급과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불리한 점이 있다.
울산산단에 자리한 에쓰오일,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은 지난 9월 말 업무협약을 맺고 외부 컨설팅 자문기관을 선정해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재편 방안을 도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업체를 선정하지 못했다.
에쓰오일은 약 9조 원을 들인 첨단 석유화학 복합시설 '샤힌 프로젝트'가 내년 6월 준공을 앞두고 있어 설비 감축 논의에 참여할 유인이 적다는 것이 쟁점이다.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에쓰오일은 기존 설비보다 3~4배 이상 뛰어난 수율로 연간 180만톤의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만들고, 이를 활용해 폴리에틸렌을 자체 생산한다.
기존에 대한유화에 공급하던 나프타도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자체적으로 소화할 계획이다. 대한유화의 나프타 수급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데 따른 대한유화와 SK지오센트릭 간 협력 등이 주요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NCC 설비 감축이 곧 경쟁력 향상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고민도 있다.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소재) 투자가 필요하고, 이와 관련한 정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화학산업협회장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도 지난달 31일 '화학산업의 날' 기념행사에서 "정부는 화학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사업재편 계획을 진정성 있게 평가하고 금융·세제·연구개발(R&D) 지원, 규제 완화 등의 지원책을 마련하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jup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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