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배 비싼' SAF 혼합 의무화, 항공료 인상 불가피…정유사 '환영'

(서울=뉴스1) 김성식 원태성 기자 = 정부가 탄소 감축을 위해 내년부터 지속가능항공유(SAF) 혼합을 의무화함에 따라 항공권 가격이 인상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SAF 가격이 일반 항공유 대비 최대 4배가량 비싸기 때문이다. SAF 의무 혼합 비율은 시행 첫해인 2027년 1%를 시작으로 2035년에는 최대 10%까지 상향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국내 공항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제선 정기항공편에 지속가능항공유(SAF) 혼합 의무화 제도를 도입한다고 19일 밝혔다. 혼합률을 단계적으로 높여 국제기준을 선제적으로 맞추고, 국적 항공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다.

SAF 혼합 의무 비율은 △2030년 3~5% △2035년 7~10%로 상향된다. 구체적인 상향 정도는 글로벌 SAF 시장 동향과 국내 항공·정유업계의 경영 환경을 고려해 향후 결정된다.

SAF는 폐식용유와 같은 폐기름, 동·식물성 유지, 농업 부산물, 옥수수 등 친환경 원료를 활용해 생산한다. SAF를 사용하면 일반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기존 항공유와 물리적·화학적 성질이 같기 때문에 별도의 항공기 개조 없이 SAF를 일반 항공유와 혼합해 사용할 수 있다. 미국시험재료학회(ASTM)는 전체 급유랑의 50%까지는 ASF 혼합이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가격이다. 지난 1월부터 SAF 혼합(2%)을 의무화한 유럽연합(EU)과 영국에선 최근 SAF 가격이 뛰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제너럴 인덱스(GX)에 따르면 유럽 내 SAF 가격은 지난달 말 기준 톤당 2631달러를 기록,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일반 항공유와의 가격 격차는 3.7배까지 벌어졌다.

시장조사업체 S&P 글로벌은 올해 글로벌 SAF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두 배 증가한 200만 톤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체 항공사 연료 소비량의 0.7%에 불과한 수준으로 글로벌 SAF 가격이 일반 항공유 대비 최대 4.2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대한항공, 티웨이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 등 국내 항공사 9곳이 SAF를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 국토부와 산자부가 지난해 8월 SAF 확산 전략을 발표하면서 이들 항공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 계기다. 모두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사가 만든 국산 SAF를 사용한다.

그러나 9개 사 모두 국내 공항에서 출발하는 일부 단거리 노선에서 주 1회 SAF 1%를 혼합 급유하는 수준에 그친다. MOU와 별개로 유럽 노선을 운항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티웨이항공 등만 올해부터 유럽 노선에 한해 SAF 2%를 혼합 사용한다.

항공사 전체 비용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안팎에 달한다. 대한항공이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부터 유럽에서 운항하는 모든 항공편에 SAF 2% 사용을 적용하면 연간 최소 114억 원에서 최대 229억 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더해 2027년부터 국내 공항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제선에서 SAF 1%를 사용하면 관련 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비용이 늘어나면 운임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당장 항공권 가격이 인상되지 않더라도 혼합 비율이 올라가면 장기적으로는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유럽 항공사들은 SAF 혼합 강제에 따른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청구하고 있다. 독일 루프트한자 그룹은 지난 1월부터 유럽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편에 좌석당 최대 72유로(약 12만 원)의 추가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앞서 프랑스가 2022년 SAF 혼합 비율을 1%로 의무화하자, 에어프랑스-KLM 그룹은 좌석당 최대 12유로(약 2만 원)의 요금을 추가한 바 있다.

정유업계에선 이번 SAF 혼합 의무화 조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간 SAF 제조 기술 및 시설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는데 정부 조치로 SAF 상용화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정유사가 이미 SAF 개발 및 투자를 진행해 왔다"며 "친환경 측면에서 SAF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인데, 혼합 의무제 시행으로 상용화가 가속화될 경우 회사 수익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SAF 생산 설비는 기존 정유 설비를 활용하는 코 프로세싱(Co-processing·공동처리) 방식이라 생산량 증대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회사별로 추후 단독 생산 설비를 갖추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seongs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