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실명제 국회 통과…中에 안방 내준 K-배터리 '반격' 기회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자동차 회사, 배터리 제작사 공개 의무
벤츠 전기차 화재 1년여 만에 입법…"국내 배터리 3사 가격 경쟁력 확보 시급"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인천경찰청 과학수사대 조사관들이 지난해 8월 인천 서구의 한 정비소에서 같은 달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로 전소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감식을 실시하는 모습(자료사진). 2024.8.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전기차 소비자를 대상으로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제공하도록 강제하는 '배터리 실명제' 법안이 국회 문턱을 통과했다. 지난해 중국산 배터리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입법 논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1년여 만이다. 중국 배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진 만큼 국내 배터리 3사가 이번 법안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14일 자동차·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국회는 전날 본회의를 열고 자동차관리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자동차 제작사 및 판매자가 전기차를 판매할 때 장착된 배터리의 제조사 등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제공한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정부가 공포하면 6개월 이후부터 시행된다.

배터리 실명제는 지난해 8월 인천 청라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대형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발의됐다. 당시 불이 붙은 메르세데스-벤츠 준대형 전기 세단 'EQE' 차량은 중국 CATL의 배터리를 탑재했다고 홍보했던 것과 달리 중국 파라시스사(社)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이는 법률 개정으로 이어졌다.

배터리 실명제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의 국내 점유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배터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은 상태에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자동차 제조사들 입장에선 적어도 국내 출시 모델에는 한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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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통계적으로 중국 배터리가 화재 위험성이 큰 것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중국 배터리보다는 국산 배터리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배터리 실명제 시행은 국내 배터리 3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르노코리아는 첫 번째 전기차 '세닉'을 지난 8월 출시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의 NCM 배터리를 탑재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다만 테슬라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는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는 벤츠 화재 이후 이미 배터리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한 상황이다. 배터리 실명제가 몰고 올 파급 효과는 제한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중국 배터리 사용이 곧 판매량 저하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 9월 출시된 기아 'EV5'는 CATL의 NCM 배터리를 탑재했지만 지난달 1150대가 판매되며 국내 전기차 판매 4위 모델에 올랐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같은 중국 회사여도 CATL은 글로벌 1위이지만, 파라시스는 10위권 밖에 있다"며 "앞으로 제조사 국적보다 브랜드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법률 개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온전히 누리려면 가격 경쟁력을 더욱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국내 소비자들의 정서를 반영해 기술력이 우수한 국내 배터리를 탑재하려고 해도 가격 경쟁력만큼은 중국 배터리에 밀리는 게 현실"이라며 "가격 경쟁력 회복을 위해선 NCM 대비 원가가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르노코리아 준중형 순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세닉 E-테크(Tech) 100% 일렉트릭'. (자료사진) (르노코리아 제공). 2025.08.21.

seongs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