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 이건희 회장의 경고, 베를린에서 확인한 '샌드위치論'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이 '샌드위치론'(論)을 꺼낸 것은 2007년이었다. 한발 앞서가는 일본과, 바짝 뒤쫓는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 경제의 처지가 마치 샌드위치를 닮았다는 자조 섞인 경종이었다.
2025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샌드위치론을 다시 떠올린 까닭은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라던 그의 덧붙인 말 때문일 것이다. 18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선두의 대열에서 이탈했지만, 중국은 거인이 됐다.
IFA2025는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란 말이 무색하게 '중국의 향연장'을 방불케 했다. 브란덴부르크 공항엔 TCL의 광고판이 걸렸고, 삼성 기자단 창문에 비친 메세 베를린 건물엔 '16년 연속 1위 글로벌 가전 브랜드'라고 적힌 하이얼의 대형 현수막이 펄럭였다.
중국은 그 표어가 선전이 아니란 듯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이센스는 부스 중앙에 RGB 미니 LED TV를 내걸고선 "OLED는 잊어라. RGB 미니 LED의 색감은 차원이 다르다"는 문구를 띄웠다. OLED TV를 앞세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세계 1위 로봇청소기 업체 로보락은 키노트에서 올해 상반기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으며, 출하량은 전년보다 65%나 뛰었다고 강조했다. 수백명의 각국 취재진이 몰린 자리에서 미국의 관세 압박을 비웃으며 "그래도 우리가 1등"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중국의 맹추격이 한국 산업계를 짓누른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0년 전에도 '격차는 불과 1년'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붙었다. 한국 기업들은 내내 초격차(超隔差)로 중국을 뿌리치겠노라 공언했지만, 어느새 중국은 추격자를 넘어 추월자의 문턱에 섰다.
찝찝한 뒷맛을 느끼며 귀국길에 오르던 차,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소식을 접했다. 미국 이민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파견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을 체포·구금했다는 급보였다.
트럼프의 정치쇼가 낳은 부작용인지, 비자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정부의 탓인진 나중 일이다. 당면한 것은 중국을 피해 북미 시장을 택했던 한국 기업들은 또다시 뒤통수를 얻어맞았고, 대미(對美) 사업은 찬물이 끼얹어졌다는 사실이다.
이건희 선대 회장이 우려한 20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국 경제는 '제2의 샌드위치론'에 맞닥뜨렸다. 위로는 미국의 불확실성이, 아래로는 기업 규제가 꼬리를 물고 압박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중국의 굴기(屈起)는 전진 중이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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