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라벨 규정에 컨트롤 타워 부재…주류업계 "수십억 손해"
9개 부처가 제각각 규정 개정…업계, 라벨 교체 등 비용 부담
"생산·통관 일정 준비 기간 2~3년…규정 변경 대응 쉽지 않아"
- 이강 기자
(서울=뉴스1) 이강 기자 = 정부 부처 간 주류 라벨 규정을 조정·관리할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업계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 9개 부처가 제각각 라벨 표시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주류 업체들은 규정이 바뀔 때마다 수억 원대 비용을 들여 용기와 라벨을 폐기하거나 재부착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모 부처의 주재로 개정안이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주류 라벨에는 삼각형 표식 크기, 글자 포인트, 자간 비율, 라벨 박스의 모서리 각도까지 모두 법령으로 규정돼 있다. 각 부처는 이를 근거로 자의적인 세부 규칙을 개정해 왔는데, 최근 5년간 10차례나 변경됐다.
2017년 정부가 '시행 시기 짝수 해 1월 통일'과 '최소 1년 유예기간' 원칙을 합의했지만, 담당자 변경 등 이유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라벨 규정을 바꿀 때마다 생산·통관 일정 대응이 쉽지 않다"면서 "예정 생산 물량을 맞추기 위해 2~3년 치 용기를 선제 발주해 놓는데, 중간에 규정이 달라지면 전량 폐기하거나 다시 붙여야 한다"고 토로했다.
피해 규모는 작지 않다. 라벨 규정이 변경되면 인쇄에 사용하는 동판을 교체해야 한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교체 비용은 개당 15만 원 안팎으로 6000여 개에 달하는 국내 주류 품목을 바꾸려면 9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이전 라벨을 떼어내고 새로 제작한 라벨을 붙이는 수작업 비용은 병당 50~200원 정도다. 맥주 캔 등의 경우에는 기존에 제작된 용기를 폐기해야 해 피해가 더 크다. 이러한 비용까지 모두 합할 경우 국내 주류 제조업계에서만 연간 수십억 원이 소요된다.
라벨 제작과 인쇄 발주, 디자인 컨펌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게는 6개월에서 최대 2년까지 걸리는 데 비해 개정 주기가 6개월에 한 번꼴이라 사실상 따라잡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규제 변경의 배경에는 부처 간 '가시성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19세 미만 판매금지' 문구를 12포인트로 규정하자, 보건복지부도 기존 10포인트였던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경고 문구를 12포인트로 상향하는 개정을 추진하는 식이다.
업계는 정부 내 일관된 관리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각 부처가 필요에 따라 자체적으로 규정을 바꾸거나, 이를 사전에 조율하거나 검토하는 절차가 없다.
한 주류업체 관계자는 "라벨 규정은 소비자 보호라는 공익적 목적이 있지만, 무분별한 변경은 산업적 손실과 환경 낭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필요한 개정이라면 존중하겠지만, 최소한 조정 절차와 예측 가능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국무조정실이나 총리실 산하에 라벨 규제 통합 컨트롤 타워를 마련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thisriver@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