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르망 557일 도전기…현대차그룹 원팀 협력 빛났다
출전 선언 후 단기간 성과…엔진 개발 속전속결
서킷 데이터 전사 공유…"양산차 적용해 고객과 원팀"
- 박종홍 기자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권위 모터스포츠 대회 '르망 24시'에서 제네시스가 완주에 성공하면서 현대차그룹의 레이스 대회 도전 과정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5년 제네시스 출범 당시 "도전해야 변할 수 있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고 한 정의선 회장의 발언처럼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을 통해 한국 완성차 업체 역사상 첫 완주라는 역사를 썼다는 평가다. 그 과정에서 그룹 최고 경영층과 레이싱 팀, 제네시스 브랜드 등의 원팀 협력도 빛을 발했다는 분석이다.
25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제네시스는 2024년 12월 4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월드 인듀어런스 챔피언십(WEC) 하이퍼카 클래스 참가를 공식 선언한 뒤, 올해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WEC 개막전 이몰라 6시 완주에 성공했다.
출전 선언 당시에는 내구 레이싱 전담 부서도 없었지만, 선언 499일 만에 직접 개발한 하이퍼카 GMR-001 17호, 19호 등 2대를 내보내 모두 완주에 성공시켰다.
더 나아가 출전 선언 557일 만인 이달 14일에는 GMR-001 19호 차량이 프랑스 르망 라 사르트 서킷에서 열린 르망 24시간에서 완주에 성공했다. 국내 브랜드 최초의 르망 24시 최상위 하이퍼카 클래스 출전이자 완주이다.
WEC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세계 최고 권위 내구 레이스 대회로 6~24시간 차량의 속도와 내구성을 겨루는 경기다. 올 시즌 기준으로 이몰라 6시를 시작으로 총 8개 경기에서의 성적을 종합해 우승을 겨룬다.
르망24시는 WEC의 8개 경기 중 하나로, 1923년 시작돼 오랜 역사와 위상을 자랑하는 대회다. 대중적 주목도와 상징성이 압도적이라 모터스포츠 내에서 WEC 시즌 종합 우승보다 르망 24시 우승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한다.
대회의 악명 역시 르망24시의 상징성을 배가하는 요소다. 긴 시간 차량의 내구성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데다, 일반적인 서킷 대비 불균일한 노면이나 야간 주행이라는 악조건까지 겹쳐 변수가 속출하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르망24시는 완주만으로도 업체의 기술력과 정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무대로 통한다.
제네시스가 이처럼 비교적 단기간에 르망 24시 완주로 '한국 최초'라는 역사를 쓸 수 있던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의 '원팀' 역량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루크 동커볼케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 사장의 제안, 정의선 회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의 추진 및 지원, 제네시스와 현대모터스포츠법인의 실행력 등이 맞물린 결과란 것이다.
실제로 동커볼케 사장은 2024년 말 WEC 출전 발표 당시 "최고 경영층에게 제네시스의 내구 레이스 참가를 제안하고 얼마 안 돼 '해보자'는 답을 받았다"며 "이 속도감이 우리가 가진 '하이퍼스피드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룹 내 '하이퍼스피드 프로젝트'가 출범한 순간이다.
또한 동커볼케 사장은 "최고 경영층이 레이스 참가의 목표를 '기술과 내구성 등 모터스포츠의 교훈을 통해 더 나은 차량을 만드는 것'이라고 명확히 제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정의선 회장은 일찍이 고성능 기술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해 왔다. 2018년 CES 현장에서 그는 "마차를 끄는 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전쟁에서 싸우거나 잘 달리는 경주마도 필요하다"며 "고성능차에서 획득한 기술을 일반 차에 접목할 때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에 꼭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릴 아비테불 현대모터스포츠법인장 겸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총감독은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실행력 덕에 트랙 안팎에서 동시에 성장할 수 있었다"며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하이퍼스피드"라고 설명했다.
프로젝트 추진을 결정한 직후 제네시스는 조직 구축과 차량 개발을 동시에 착수했다. 자체 신생 팀인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GMR)을 구성했고, 엔지니어와 드라이버 역량을 키우기 위해 프랑스 명문 레이싱 팀 'IDEC 스포트'와 손을 잡았다.
이후 지난해 유러피언 르망 시리즈(ELMS) LMP2 클래스에 참가해, 내구 레이스 운영 노하우와 기술 데이터를 축적하고 드라이버들의 기량을 끌어올려 도전의 토대를 닦았다.
단기간에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기존에 수년간 검증을 마친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엔진을 WEC용 엔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속도감 있는 개발을 위해 장재훈 부회장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레이싱팀과 현대모터스포츠법인, 남양연구소의 공동 기술 개발을 위해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지난해 5월에는 프랑스 GMR 워크숍을 찾아 개발 현황을 살폈다.
그 결과 WRC용 1.6L 터보 직렬 4기통 엔진 두 개를 결합한 'G8MR 3.2L 터보 V8' 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그룹이 개발한 모든 파워트레인 중 가장 강력한 출력으로, 이론상으로는 최대 900마력의 힘을 낼 수 있다. 또 같은 조건의 양산 엔진 대비 중량은 수십 킬로그램(㎏) 가벼워 차량의 무게를 낮추는 레이스 조건에 최적화했다.
아비테불 총감독은 검증된 엔진을 활용한 것에 대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기술과 노하우를 토대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룹의 역량을 집중해 함께 완성한 GMR-001 하이퍼카 19호 차량은 라 사르트 서킷을 총 372바퀴, 5068㎞ 소화하며 완주에 성공했다. 서스펜션 이상으로 레이스 종료 7시간 반을 남겨둔 시점에서 리타이어한 17호 차량에 대해선 문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르망24시를 포함, 모터스포츠 대회 참가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와 기술력, 경험을 양산차에 적용해 상품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현대모터스포츠법인은 서킷에서 생성되는 극한의 차량 데이터를 모든 현대차 엔지니어가 접근하고 이를 기반으로 양산 차량을 개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내구 레이스를 통해 고객을 위한 더 나은 차량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서킷에서의 원팀을 넘어, 고객을 위한 원팀을 만드는 게 하이퍼스피드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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