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조엔이 움직인다"…'저축의 나라' 日 흔드는 글로벌X ETF
[선진 증시를 가다]②장봉석 글로벌X 재팬 대표 인터뷰
"신 NISA가 만든 대전환…ETF 전문 운용사로 빈칸 채워"
- 신건웅 기자
(도쿄=뉴스1) 신건웅 기자 = 2200조 엔(약 2경 811조 원)의 일본 개인 자산이 '잠에서 깨어나' 투자로 흐르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디플레이션·제로 금리·저성장에 묶여 있던 일본 경제의 금리와 임금, 물가 등이 오르면서 주식시장도 회복세에 진입했다.
닛케이225 지수는 지난달 4일 장 중 한때 5만2636.87포인트를 기록하며 1989년 버블기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서 그동안 은행 예금을 고집하던 일본 개인 고객들도 저축에서 투자로 포트폴리오를 조정 중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있다. 일본 개인 투자자들이 장기투자 상품으로 ETF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도쿄에서 만난 장봉석 글로벌X 재팬(GLOBAL X Japan) 대표는 일본 ETF 시장에 대해 "이제 막 성장판이 열리기 시작한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개인 금융자산 2200조 엔 중 절반 이상은 여전히 예금·적금에 묶여 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 탈출과 금리·임금 상승, 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이 자금이 '저축→투자' 대전환기에 접어들었다.
그 중심에는 지난해부터 시행한 신(新) NISA가 있다. 신NISA의 혜택 확대 및 영구화로 개인 자금이 연간 3조 5000억 엔(33조 1107억 원)에서 15조 엔(141조 9030억 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장 대표는 "신NISA는 일본 개인을 다시 자본시장으로 끌어올린 역사적 제도"라며 "특히 20·30대 젊은 층이 신NISA를 통해 주식시장에 대거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적립형 NISA에서 ETF 편입 비율은 아직 제한적"이라며 "본격적 대중화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ETF를 선보였지만, 일본은행(BOJ)이 경기부양책으로 사들인 자금을 빼면 실제 시장 규모는 200조 원에도 못 미친다. 한국 ETF 시장 규모가 300조 원에 육박하는 것을 고려하면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장 대표는 "일본은 아직 ETF 대중화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그렇기에 앞으로 성장 여지는 오히려 더 크다"고 기대했다.
ETF 시장에 투자하는 일본 개인투자자도 지난 2020년 7월 92만4846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7월에는 204만3437명으로 2배를 넘어섰다.
글로벌X 재팬은 미국의 글로벌X와 일본 다이와증권그룹이 각각 50%씩 지분을 가진 합작사다. 2019년 출범한 신생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상장 ETF 61종, 운용자산 7000억 엔(약 6조 6235억 원) 규모로 성장하며 현지 ETF 시장 6위(BOJ 보유분 제외)에 올랐다.
특히 일본 ETF 시장은 노무라와 다이와·아모바(옛 닛코)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그 속에서 글로벌X 재팬은 'ETF 전문 회사'를 내세워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장 대표는 "ETF 전문 운용사로서 '혁신성과 속도'를 앞세워 일본 ETF 시장이 갖지 못한 부분을 메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사가 여러 상품을 동시에 운용한다면, 우리는 ETF에만 집중한다"며 "시장의 빈칸을 가장 빠르게 채우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미래에셋금융그룹의 폭넓은 해외 네트워크와 상품 소싱력을 활용해 기존 일본 ETF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테마형·인컴형·집중형 전략 ETF를 적시에 공급한 것이 운용 규모 증가에 주효했다.
최근 성과를 보면 일본 투자자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2023년 일본거래소 전체 ETF 중 연간 성과 1위는 '글로벌X 일본반도체 ETF'가, 지난해는 '글로벌X US Tech Top 20 ETF'가 차지했다. 올해는 '우라늄 ETF'가 시장 상위권을 기록 중이다.
장 대표는 "일본 투자자는 성장성 높은 테마형 ETF에 강하게 반응한다"며 "반도체 장비·게임·애니메이션·대형은행·주주환원 기업 등 일본 특성을 살린 테마는 앞으로도 유망하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인컴형 상품들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일본 투자자는 장기간 금리 0% 시대를 거치며 '안정적 현금흐름'에 대한 선호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글로벌X는 일본 최초로 커버드콜 ETF를 상장했고, 고배당 ETF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그는 "일본인은 인컴형 자산에 대한 신뢰가 크다"며 "커버드콜 ETF 수요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리스크요인도 있다. 일본 ETF 시장을 키운 1등 공신인 일본은행이 보유 ETF 매각을 발표하면서 시장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보유분을 모두 팔려면 130년이 걸릴 정도의 규모지만, '매입→매각' 전환 소식만으로도 투자심리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장 대표의 분석이다.
끝으로 장 대표는 "일본은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여전히 세계 3위 경제로, 한국과 산업 연관성이 깊다"며 "글로벌 분산투자라는 관점에서 일본 ETF는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ke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한국 증시는 경제 규모와 기업 경쟁력에 비해 늘 저평가돼 왔다. 개인은 투자보다 저축에 머물렀고, 증시는 투기와 불신의 대상이 됐다. 그 사이 선진국은 달랐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속에서도 개인 투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였고 홍콩은 글로벌 자본의 허브로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미국은 증시를 혁신 기업의 성장 통로이자 국민 자산 형성의 핵심 장치로 키웠다. 새 정부가 증시 활성화를 국정 과제로 내건 지금, 한국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혁신과 부의 선순환을 위해 자본시장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