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서학개미 전성시대, 멀어지는 코스피 5000

신건웅 금융증권부 차장
신건웅 금융증권부 차장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올해 한국 증시는 사상 유례없는 랠리를 펼쳤다. 반도체 사이클과 정책 모멘텀, 글로벌 매크로 호조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연초 이후 코스피 지수는 65% 넘게 올랐다. 글로벌 주요국 증시 중 단연 1위 수익률이다.

그러나 화려한 숫자와 달리, 시장 '체력'은 여전히 불안하다. 글로벌 변수가 나올 때마다 코스피는 출렁였다. 고질적 문제인 '수급 불안정성' 탓이다. 연기금은 국내 비중을 줄이고 있고, 기관은 단기 투자 행태를 지속 중이다. 여기에 외국인은 대규모 순매수와 순매도를 오가며 지수를 흔들었다.

이 틈을 메운 것은 개인이었다. 올해 증시 랠리의 상당 부분은 외국인이 이끌었지만, 지수 하단을 떠받친 힘은 꾸준히 상장지수펀드(ETF)와 인공지능(AI) 관련주 등을 매수한 개인이었다. 코스피 시장의 개인 거래대금 비중은 절반을 웃돈다.

그랬던 개인들이 이제는 조용히 한국 시장을 떠나고 있다. 올해 국내 주식을 11조 원 이상을 팔고, 해외 주식은 43조 원 넘게 사들였다. 이미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규모는 250조 원을 넘어섰다. 현대차 시가총액의 5배에 육박한 규모다. 거대한 '투자 이민'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일시적 트렌드가 아니다. 고령화, 저성장과 부동산 정체, 원화 약세 등으로 한국 시장의 투자 매력이 줄면서 개인들의 해외 투자는 하나의 생존 수단이 됐다. 한국의 자본 흐름은 이미 '국내→글로벌'로 재편됐다.

문제는 개인이 떠난 빈자리다. 외국인과 기관은 지수 상승장의 불을 붙일 수는 있지만, 지수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개인이다. 해외를 봐도 마찬가지다. 일본 증시 부활의 핵심은 외국인이 아닌 '개인 저축 계좌(NISA)' 자금이었고, 미국 혁신기업의 절반 이상은 개인 모험자본에서 나왔다.

개인이 떠난 시장에서 코스피 5000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모험자본과 생산적 금융도 모두 공허한 구호로 끝날 것이 뻔하다. 개인이 투자해야 혁신기업에 자금이 돌고, 경제가 살아나며 국민들의 노후 사다리가 완성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투자할 만한 시장'이 되는 것이 급선무다. 기업의 혁신과 성장이 지속되고, 불합리한 규제는 해소돼야 한다. 개인이 투자해도 성장 기업이 나오지 않는 시장이라면, 다시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개인의 장기 유입을 가로막는 과세·규제·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 참여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 증시는 2026년 코스피 5000을 향해 가는 항로에 들어섰다. 정부의 의지만으로도, 기업의 실적만으로는 갈 수 없다. 시장을 떠난 개인이 돌아올 때 코스피 5000 시대는 비로소 현실이 될 것이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