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자사주 EB' 발행, 왜 논란인가요? [손엄지의 주식살롱]
자사주 EB, 의결권 되살아나는 효과…"사적 지배력 유지 수단"
정치권·금감원, 기업들 자사주 EB 발행 자금 조달에 주시
- 손엄지 기자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최근 태광산업(003240)에 이어 광동제약(009290)까지 자사주를 이용해 교환사채(EB)를 발행하겠다고 공시해 논란입니다. 태광산업의 EB 발행은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여러 차례 문제 제기됐고, 광동제약 EB 발행도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결국 태광산업의 EB 발행 계획은 잠정 중단됐고, 광동제약은 29일 '철회'를 공시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시장 분위기에 몸을 사린 결과로 보입니다.
EB는 기업이 보유한 자사 또는 다른 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일정 조건에서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입니다
전환사채(CB)와 다른 점은 '신주'가 아니라 이미 보유 중인 주식을 내놓는 겁니다. 그래서 EB 발행을 해도 회사의 자본금 증가는 없습니다.
예컨대 회사가 EB를 발행한다고 하면 투자자(채권자)는 회사에 돈을 빌려주고 대신 EB를 받습니다. 투자자는 일정 기간이 지나고 회사의 주가가 오르면 "돈 대신 EB를 행사해 주식으로 받을게"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 회사는 약속한 주식을 약속한 가격에 투자자에게 넘겨야 합니다.
광동제약의 공시를 보면 EB 교환 가격은 최근 평균가보다 15% 높은 6590원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EB 이자율은 0%입니다. 30개월 뒤부터 광동제약의 주가가 6590원 이상이면 투자자는 EB를 주식으로 바꿀 수 있고, 만약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 대신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EB는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자금조달 수단입니다. 저금리로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하고, 기존 주식 수 증가 없이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태광산업과 광동제약이 '자사주'를 담보로 EB를 발행한 것에 있습니다.
자사주는 회사가 회삿돈으로 회사 주식을 사들여 보유하고 있는 주식입니다. 이 주식은 이미 발행된 주식이지만 회사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결권도 없고, 배당도 받을 수 없습니다.
통상 자사주를 사고, 이를 소각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 주당 가치가 올라갑니다. 그래서 자사주를 주주가치 제고용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자사주를 임직원 보상용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사주를 담보 잡아 EB를 발행하면 결국 투자자는 자사주를 시장에 되팔 수 있어 지분 희석과 오버행(대량 매도 물량 부담)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의결권도 부활합니다. 만약 EB를 회사의 총수 일가 또는 우호세력에 넘길 경우 사적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전용될 수 있습니다. 회삿돈으로 산 주식인데 말이죠.
최근 기업들이 자사주 EB를 잇달아 발행하는 건 정치권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입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특별한 이유를 제외하고는 가진 자사주를 모두 소각해야합니다. 자사주 소각 의무를 피하고 보유 중인 자사주를 최대한 활용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자사주 EB 발행이 견제받자 주가수익 교환(PRS)으로 우회하는 모양새입니다. PRS는 회사가 자사주를 실제로 팔지 않고, 주가 변동에 따른 수익(또는 손실)만 금융기관과 나누는 계약입니다.
정치권은 기업들의 자사주 EB 발행과 PRS 방식의 자금 조달에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달 20일부터 금감원은 EB 공시 의무 강화 개정안을 시행했고, 현재 주요 증권사들로부터 PRS 계약 관련 자료를 취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e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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