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취지 '엇박' 탄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가치투자자 망연자실
자본시장법 맹점 노린 두산 지배구조개편…후폭풍 계속
"일반주주 보호 부족한 현행 법제도 문제점 보여"
- 김정현 기자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이래서 국장(국내 증시)에서 가치투자하는 사람은 바보라는 소리듣죠."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후폭풍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특히 두산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241560)에 '가치투자'를 해온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이번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밸류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태라는 지적까지도 나오고 있다.
◇두산, 알짜기업 상폐하며 적자기업 밑으로…지주사만 웃었나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97%인 1조 3899억 원을 책임지는 '캐시카우'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454910)와 합병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세부적으로는 현재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034020)를 사업회사(존속법인)와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한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신설투자회사를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식이다.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나머지 54%의 지분에 대해 포괄적 주식 교환으로 100% 지분을 확보한 뒤, 두산밥캣을 상장폐지하고 완전 자회사로 둘 계획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신주 3406만 1202주를 교부하고, 이를 두산밥캣 주식 1주당 0.6317462주 비율로 교환한다.
두산 측은 이번 결정의 이유에 대해 경영 효율화 및 스마트 머신 사업 강화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적자기업인 두산로보틱스의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두산밥캣에 대한 지주사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구조 개편이 완료되면 두산의 두산밥캣 간접지분율은 13.8%에서 42%로 크게 증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두산밥캣 주식 교환 비율, '고평가 논란' 로보틱스 반영 안돼
이번 안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건 두산밥캣의 소액 주주들이다. 이들은 이번 합병 가치 산정 과정에 본질적 기업가치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만을 표하고 있다.
지난 11일 기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시가총액은 각각 5조 2130억 원, 5조 5291억 원으로 모두 5조 원대 초중반이었다. 주당 가격은 5만 2000원, 8만 5300원이었다. 시총과 주가 비율이 비슷하다 보니 이에 따라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교환 비율이 1대 0.63으로 정해진 셈이다.
그러나 실제 기업가치는 주가와 딴판이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 9조 7589억 원, 영업이익 1조 3899억 원을 기록했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 530억 원, 영업손실 192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17일 기준 양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도 각각 0.82, 12.57로 차이가 크다.
시장에 자리잡은 그룹의 '알짜' 흑자 건설장비회사인 두산밥캣과 지난해 상장한 뒤 영업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몸값 고평가'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산로보틱스의 차이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가치투자자 날벼락…두산,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 비판도
이에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을 통해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해서, 결국 본질가치를 찾아갈 것이라고 믿고 오래 보유하려던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로봇 테마주로 바꾸든지 현금 청산을 당하든지 양자 선택을 강요받는 날벼락을 맞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행동을 해서 모두가 기대하는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은 두산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이런 일을 누구도 저지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우리의 법과 제도,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이라고 꼬집었다.
경제개혁연대도 지난 17일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이사회가 선택한 지배권 이전 방식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일반 주주 이익보다 그룹의 이익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로보틱스에 직접 두산밥캣 지분을 매각한 후, 두산밥캣은 공개매수 방식을 통해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며 "이번 사례가 일반주주 보호가 부족한 현행 법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현행법 상으로는 문제 '無'…"입법목적 달리 투자자 보호 안돼"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이번 두산그룹의 지배구조개편은 알짜배기 기업을 적자 기업 밑으로 붙이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주주들의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국내 자본시장법이 상장회사 합병에서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현행법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사의 충실의무 차원에서도 문제를 지적하기는 어렵다"며 "과거 아마존이 적자 기업일 때도 주가는 높이 형성돼 있었던 것처럼, 이사들이 '로봇이 지금은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미래 성장가능성이 큰 산업이기 때문에 주주들에게 (합병 결정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권에서는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도 현행 규정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합병가액 산정방식이 관행으로 자리잡았으나, 시장주가에 의존한 합병가액 산정방식과 합병시점의 임의성, 합병가액의 불확실성 등의 문제로 인해 당초 입법목적과 달리 투자자 보호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합병가액의 적절성과 공정성에 대해 회사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시장에서 이해관계자들이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Kri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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