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갚게 해" 대통령 격노에 혼쭐 난 금융권…부랴부랴 채권정리
(종합)상록수 장기연체채권 추심 문제 직격 "필요하면 입법해서라도 해결"
신한카드·우리카드·KB銀·하나銀, "전액 채권 매각 의사…송구하다"
- 한병찬 기자, 전준우 기자, 김도엽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전준우 김도엽 기자 =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 당시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설립된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가 20년 넘게 장기 연체채권을 추심해온 사실이 논란이 되자 금융권이 뒤늦게 채권 정리에 나섰다. 대통령이 "원시적 약탈금융"이라고 공개 질타하자 주요 금융사들이 일제히 채권 매각 방침을 밝히면서, 그동안 사실상 추심 구조를 방치해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엑스(X·구 트위터)에 카드대란 당시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설립된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의 장기 채권이 정부의 새도약기금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 제기와 관련해 "아직도 이런 원시적 약탈금융이 버젓이 살아남아 서민의 목줄을 죄고 있는 줄 몰랐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 국무회의에서도 "카드대란 때 카드회사 등 금융기관들은 정부 세금으로 도움을 받았는데 국민들의 연체채권을 아직도 악착같이 추심하고 있다"며 "죽을 때까지 10배, 20배 이자가 늘어서 집안에 콩나물 한 개라도 팔아서 다 갚아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이억원 금융위원장을 향해 "이게 국민적 도덕 감정에 맞느냐"며 "필요하면 입법해서라도 해결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상록수는 2003년 카드대란 당시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금융권이 공동 설립한 민간 특수목적회사(SPC)다. 신한카드(30%)를 비롯해 하나은행(10%), IBK기업은행(10%), 우리카드(10%), KB국민은행(5.3%), KB국민카드(4.7%) 등 제도권 금융사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나머지 30%는 대부업체 등 3곳이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금융사가 정부의 새도약기금 협약사로 참여하면서도 상록수를 통한 채권 이관은 사실상 회피해왔다는 점이다. 상록수는 연체 채권을 새도약기금에 넘기지 않고 계속 보유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주주로 참여한 금융사들이 최근 5년간 약 420억 원의 배당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록수 정관상 채권 매각 등 주요 의사결정은 전체 주주의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야 한다. 9곳 주주 중 단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채권을 넘길 수 없는 구조인 데다 잔액이 없어도 배당이 꾸준히 지급되는 상황인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4월에서야 새도약기금 측이 주주사들에 지분 이관 의향을 문의했고 각 사의 매각 논의가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발언 이전까지는 사실상 방치된 셈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금융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잇달아 채권 매각 의사를 밝혔다.
우리카드는 상록수 보유 장기연체채권 전액을 새도약기금에 매각 결정하며 "우리카드는 앞으로도 포용 금융의 가치를 바탕으로 취약계층의 회복과 재기를 돕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신한카드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제적 어려움 속에 놓인 차주들의 상황을 더 일찍 헤아리지 못한 점을 깊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자사 지분에 해당하는 채권 전액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새도약기금에 매각하기로 했다.
KB국민은행은 지분에 해당하는 채권 전액을 새도약기금에 매각하기로 결정하며 "그동안 장기 연체 채무자들이 금융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KB국민카드는 별도 채권 잔액은 없으나 지분 보유사로서 채권 매각에 동의하기로 했다.
IBK기업은행도 잔액이 없는 상태로 장민영 은행장이 이날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양도에 대한 동의를 암묵적으로 얘기한 상태"라며 "조속히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하나은행도 각 사 지분에 해당하는 채권을 새도약기금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채권이 새도약기금으로 이관되면 대상 차주에 대한 추심은 즉시 중단된다. 이후 상환 능력에 따라 채무 조정과 분할 상환이 진행되며, 기초생활수급자 등 상환 능력이 없는 차주는 1년 이내 채권이 자동 소각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상록수가 새도약기금에 들어오도록 협조 요청과 공문을 발송해 왔지만, 여러 금융기관이 모여 만든 회사다 보니 주주 전체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표면적 이유가 있었다"며 "이익이 뒤에 자리 잡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주주들에게 개별적으로 물어보면 다 참여할 것"이라며 "다양한 해결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장기 연체채권 추심 관행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 대통령이 “입법해서라도 해결하라”고 공개 지시한 만큼 배드뱅크 구조와 장기 추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제도 개편 논의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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