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추천 사외이사"에 금융지주 비상…색깔 드러내는 이찬진
4년 전 국민연금서 1차 제안…금감원장 맡아 재점화
금융권 "주주 추천과 국민연금 추천은 전혀 다른 문제"
- 김근욱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이사회에 '국민연금 추천 사외이사'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을 통한 정부의 금융지주 통제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관치' 우려 때문이다.
이 원장은 2021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KB·신한·하나·우리 등 금융지주에 사외이사를 추천하자는 안건을 낸 바 있다.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가 잇따르자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이유로 들었다.
금융권에서는 지난 8월 취임한 이 원장이 '허니문 기간'을 마치고 본격적인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주주에게 추천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며 원칙론적 입장을 밝혔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달 금융지주와 '지배구조 개선 TF'를 개최한다. 핵심 안건으로는 '사외이사 추천경로 다양화'가 있다.
현재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주로 외부 전문기관의 추천을 통해 선임된다. 추천 사유가 공시되긴 하지만 형식적 문구에 그쳐, 실제 추천 과정과 경로가 공개되지 않는 '깜깜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금감원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금융지주가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을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감원이 의미하는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은 국민연금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맞다"며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자 금융지주들의 최대 주주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어 "주주에게 추천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국민연금이 실제로 추천을 하느냐 마느냐는 그다음 문제"라고 덧붙였다.
금융권은 이 원장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해온 것으로 본다. 실제 이 원장은 2021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시절 삼성물산·포스코·CJ대한통운·KB금융·우리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 등 7개 기업에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자고 제안했다.
추천 이유는 KB금융 등 4개 금융지주가 사모펀드 관련 소비자 피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이 원장은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신분으로 기금위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국민연금의 첫 사외이사 추천 시도는 내부와 외부의 반대에 부딪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국민연금이 기업에 직접 주주제안을 통해 경영에 관여하려 한 첫 사례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친구로 알려진 이 원장은 지난 8월 취임 직후 자신을 향한 시장의 우려에 "과격한 사람이 아니다" "튀는 행동 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이어오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구체적인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방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주주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주주가 '국민연금'일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는 주장이다.
실제 신한은행 등 일부 은행은 주주 추천을 받고 있으나, 국민연금은 사실상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적지 않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그동안 가장 강조해온 것이 ‘이사회의 독립성’ 아니냐"며 "독립성을 얘기하면서 정부 측에 가까운 국민연금이 이사회에 들어온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금감원이 사외이사에 IT 보안·금융소비자 분야 전문가를 포함하라고 요구하는 부분도 "과도하게 개입하려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금융회사마다 경영 전략과 사업 구조가 다른데,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사외이사 구성을 강제할 수도 없고, 강제하자는 것도 아니다"라며 "다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ukgeu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