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전부터 선언한 '동남아 진출'…윤호영 카뱅 대표 10년 만에 꿈 이뤘다
"태국에 서비스 선보일 것"…가상은행 인가로 현실화
우리나라 은행 27년 만에 태국 재진출…인니서도 성과
- 김도엽 기자
(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
"태국, 말레이시아 등 카카오톡 이용자가 많은 동남아에 인터넷은행 서비스를 선보이겠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가 카카오 부사장이던 2015년 11월,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사업계획 상세 브리핑'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 말이다. 카카오뱅크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사업자가 된 지 하루만으로,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금융당국의 예비인가 평가 항목에 '해외진출 가능성'이 있긴 했으나, 국내에서 본격적인 영업 시작도 전에 글로벌 진출을 공식 선언한 건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윤 대표의 꿈은 불과 10년 만에 현실화했다. 카카오뱅크가 전날(19일) 태국 정부로부터 '가상은행(Virtual Bank)' 인가를 받으면서다. 태국 정부의 1호 가상은행으로, 카카오뱅크는 지난 2023년 태국 정부가 가상은행 사업을 추진하자마자 일찌감치 태국 금융지주사 SCBX와 '태국 가상은행 인가 획득'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꾸준히 협력해 왔다.
태국 진출은 윤 대표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국내에서 제4 인터넷전문은행 등장이 예고되는 등 포화상태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서 새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함이다. 준비 역량에 따라 사업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SCBX는 태국 3대 은행 중 하나인 SCB(시암상업은행)를 포함해 신용카드 사업을 운영하는 Card X, 금융투자서비스를 제공하는 Innovest X 증권 등 20여 개의 금융·비금융 계열사를 산하에 두고 있는 태국 '대표 금융지주'다. SCBX의 현지 인프라에, 카카오뱅크의 인터넷전문은행 노하우를 이식할 경우 현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담겼다.
가상은행의 경우 오프라인 지점 없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우리나라 인터넷전문은행과 유사한 점도 카카오뱅크의 강점이다.
윤 대표는 직접 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현지에 카카오뱅크의 우수성을 적극 알려왔다. 지난 4월 방콕에서 열린 글로벌 핀테크 컨퍼런스 '머니 20/20 아시아'에 유일한 한국인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카카오뱅크의 디지털은행 성장 전략과 혁신 경험도 현지 업계 및 당국에 알렸다.
특히 카카오뱅크의 태국 진출은 현지 금융당국의 기조와도 연관성이 많다. 룽 포샤난다 말리카마스 태국은행 부총재는 최근 기조연설에서 '3대 오픈(오픈 경쟁, 오픈 인프라, 오픈 데이터)'와 함께 포용적 디지털 금융 생태계 구축을 강조한 바 있다.
세부적으로 △오픈 경쟁, 신규 디지털뱅크 사업자 진입을 적극 장려 △오픈 인프라, 카카오뱅크 UI·UX를 태국에 이식 △오픈 데이터, 데이터 공유와 협업을 통한 금융 취약계층 대상 맞춤형 금융서비스 제공 등이다. 윤 대표는 태국 행보를 통해 이런 카카오뱅크의 진출 의지와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어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태국 진출 준비를 위한 추가 인력 채용도 지시했다. 인가 획득 즉시 서비스 개시를 위한 준비에 돌입하기 위함이다.
사전준비를 위한 모바일 개발자, 백·프론트엔드 개발자, 디자이너, 서비스 기획자 등 필수 인력을 채용했으며, 현재도 △글로벌 사업 기획 담당자 △글로벌 서비스 디자이너 △글로벌 모바일 개발자 등의 채용을 진행 중이다. 채용 인원만 수십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용 기반으로 태국 가상은행 시스템 구축 pre-PMO(ISP)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가상은행 출범을 위한 준비법인은 오는 3분기 중 설립되며, 약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 하반기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카카오뱅크는 상품·서비스 기획과 모바일 앱 등 IT 시스템 구축 전반을 주도하며, 설립될 가상은행의 2대 주주로 참여한다.
카카오뱅크의 태국 진출은 우리나라 은행권에선 상징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지난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은행은 태국에서 모두 철수했는데, 카뱅이 27년 만에 다시 재진출한 것이다.
윤 대표는 "태국 가상은행 인가 획득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발판이자, 대한민국 디지털 금융 기술의 우수성을 알릴 소중한 기회"라며 "한국계 은행과 기업의 태국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태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카카오뱅크가 동남아 최대 플랫폼 '그랩(Grab)'과의 협력 바탕이다. 그랩은 인도네시아 디지털은행 '슈퍼뱅크' 주요주주로, 카카오뱅크는 그랩과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슈퍼뱅크에 지분 10%(1000억 원) 투자를 단행했다.
당시 슈퍼뱅크는 영업 전부터 디지털 전환 비용이 증가하며 손실이 증가하는 상황이었으나, 카카오뱅크가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태국 가상은행과 같이 카카오뱅크의 디지털 기술을 슈퍼뱅크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현재 슈퍼뱅크는 300만 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며 빠르게 성장 중이다.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말 슈퍼뱅크와 금융 컨설팅 계약을 체결해, 카카오뱅크 아이디어가 담긴 신규 상품을 곧 인도네시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doyeo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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