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공방] 외국 제도 벤치마킹한다면…홍콩·일본식 거론
홍콩, 시가총액 일정 수준 이상 종목에만 공매도 허용
일본, 중앙집중방식 주식대차재원 공급 금융기관 육성
- 박응진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한국의 공매도(空賣渡) 규제 수준은 외국시장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게다가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 이들의 공매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라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상당수 개인투자자는 공매도 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하지만 증시가 과열될 때 지나친 주가 폭등을 막아 거품을 방지하고 하락장에서는 증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공매도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공매도 제도를 유지하되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 이상인 종목에만 공매도를 허용하는 홍콩식 공매도 지정 제도나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접근성을 높인 일본식 공매도 시스템 등을 벤치마킹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 '업틱룰·과열종목 지정제'…외국에 비해 규제 강해
공매도는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증권사 등으로부터 빌려서 판 뒤 실제로 주가가 내리면 이를 싼 가격에 다시 사들여서 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가 내려가는 게 공매도 투자자에게는 이익이다. 한국에서는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접근성이 떨어져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부정적인 인식 등에 따라 한국은 외국시장과 비교해 강한 수준의 공매도 규제 체계를 갖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發) 금융시장 패닉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난 3월16부터 오는 9월15일까지 6개월간 모든 상장 종목의 공매도를 금지했다. 현재는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일부 아시아 국가만 공매도 금지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5월 그리스, 벨기에, 스페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6개국은 공매도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격규제책인 '업틱룰'(Uptick Rule)을 전면 도입한 곳은 주요국 중 한국과 홍콩 뿐이다. 업틱룰은 공매도에 의한 인위적인 가격하락을 방지하지 위해 직전 체결가격 이하의 공매도 호가를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영국 등 유럽과 호주는 업틱룰을 도입하지 않고 있고, 미국과 일본은 주가가 장중 전일 대비 10%이상 하락한 경우에만 업틱룰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주가 하락과 공매도 규모가 크게 증가한 개별 종목에 대해 다음날 공매도를 금지하는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제도는 한국만 유일하게 시행(2017년 3월부터)하고 있다. 또 한국은 공매도 거래의 투명성을 위해 투자자별·종목별 공매도 잔고를 공시하고, 거래소는 매일 종목별·업종별 공매도 거래현황을 공표하고 있다. 반면 주요국들은 투자자별 또는 종목별 중 1가지에 관한 잔고만 공시하고 있다.
공매도 호가표시의 경우 한국과 홍콩, 일본, 미국이 하고 있고, 영국 등 유럽, 호주는 안 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 대부분은 주식을 빌리지 않고 매도부터 하는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미국은 무차입 공매도를 악의적으로 남용하는 경우에만 금지하고 있다.
◇홍콩, 시가총액 일정 수준 이상 종목에만 공매도 허용
외국 공매도 제도를 참고해본다면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 이상인 종목에만 공매도를 허용하는 홍콩식 공매도 지정 제도나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접근성을 높인 일본식 제도 등을 벤치마킹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지난 3월 금감원은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 도입을 금융위와 협의했다. 이는 지난 2018년 4월 삼성증권의 배당 착오에 따른 '유령주식' 사태 등으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매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윤석헌 금감원장이 낸 아이디어로 전해졌다.
홍콩은 지난 1994년부터 시가총액이 30억홍콩달러 이상이면서 12개월 시가총액 회전율이 60% 이상인 종목 등을 공매도 가능 종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또 공매도 지정 종목 리스트(List of Designated Securities Eligible for Short Selling)를 공시하고 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시가총액이 약 4700억원 이상인 이른바 대형주 등에 대해서만 공매도가 허용된다. 개인투자자들의 거래가 상대적으로 많은 중·소형주에서는 공매도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투자자들의 거래 비중이 높은 중·소형주에 대한 공매도 폐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금융위는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 도입에 부정적이다. 주요국 대부분이 도입하지 않고 있는 제도를 한국만 도입하면,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에 문제가 생겨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 도입에 관해 금융당국 간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 중앙집중방식 주식대차재원 공급 금융기관 육성
개인투자자의 공매도가 거의 없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개인투자자의 공매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 '한국과 일본의 주식 신용거래제도 비교 연구'에 따르면 일본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비중은 2017년 거래대금 기준 23.5%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 0.4%, 코스닥 0.7%와 비교해 34~59배에 이른다.
황 연구위원은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거래 부진에 대해 "공매도 거래에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공매도 거래에 필수적인 주식대차(貸借)에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주식대차는 주식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서 기관·외국인 투자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신용도를 기반으로 공매도를 위해 필요한 주식을 빌리기가 용이하다. 주식을 대규모로 보유한 투자자에게 직접 접촉하거나 또는 중개기관을 이용해 주식을 빌리는 계약을 체결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는 주식을 빌리는 게 매우 어렵다. 상환불능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아 신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로는 증권사가 제공하는 신용거래대주 서비스 뿐인데, 빌릴 수 있는 주식의 종목과 수량에 제약이 있어 원하는 종목을 필요한 만큼 실시간으로 빌리기가 힘들다.
일본 개인투자자도 신용도가 낮아 직접 주식을 빌리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본 증권업계는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대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종목·수량 제한도 거의 없다. 증권사가 스스로 확보한 주식만을 재원으로 활용해 서비스를 하면 수량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중앙집중방식으로 주식대차재원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금융기관이 육성됐다.
황 연구위원은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장기적으로는 공매도가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활용 가능한 투자전략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다"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용거래대주 서비스가 확대될 수 있도록 대출재원을 풍부하게 확보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신용거래대주의 재원을 효과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라면서 "위험·유동성 관리에 전문성을 가진 일원화된 대주 공급주체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24일 금융위도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대주시장을 확대해 공매도 제약요인을 해소하겠다면서 올해 하반기 중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금융위 관계자는 "외국의 다양한 제도를 보고 있다. 그러나 외국 제도만 벤치마킹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해당 제도에 대한 필요성 등 인식이 한국에 깔려 있어야 한다"면서 "단기간에 외국의 공매도 제도를 벤치마킹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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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는 9월15일 공매도 6개월 금지 종료 시한이 다가오면서 공매도를 둘러싼 공방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가 외국인과 기관의 전유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8월 중 공청회 등을 통해 찬성과 반대 양측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고 공매도 금지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뉴스1은 공매도 시장의 현황과 문제점, 외국 사례 등을 통해 공매도 제도의 나아갈 방향을 짚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