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영하 10도 입춘 풍경…대통령 입만 바라봤다
- 배성민 기자
(서울=뉴스1) 배성민 기자 = # 4일은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 아침 기온은 영하 10도였다. 출근길 외투 주머니에 손을 푹 꽂고 있었다. 지하철역 계단 앞에서는 배낭을 멘 아주머니들이 분주히 광고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피트니스 클럽도 있고 영어학원 광고도 있다. 인사철이라 그런지 꽃가게 책받침도 있었다. 가방을 한 손에, 나머지 한손은 주머니에 꽂은 이들은 지나쳤다. 몇걸음 뒤 광고 전단지가 수북히 쌓인 쓰레기통이 보였다. 두꺼운 전단지 뭉치가 얇아져 빈손이 되지 않으면 그들의 일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 종이컵과 담배꽁초가 수북했던 휴지통이 텅 비어있었다. A사 텔레마케팅 센터가 있는 도심 빌딩 옆 휴게공간이 4일 유난히 휑했다. 평소 TM 상담사들은 건물안 커피전문점이 있는데도 스틱형 커피를 고집했다. 짜증나는 고객에 대해 말할 때 몇몇은 담배를 꺼내들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사라진 것이다. 빼꼼히 열린 문 틈으로 본 센터 안은 사람이 없었다.
# ‘카드 만드세요.’ 백화점과 마트 한켠에서 카드 발급을 권유하는 중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며칠 뒤면 듣지 못 하게 된다. 카드정보 유출의 진원지인 KB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 등 3개사의 신규 카드발급 등 일부 영업이 3개월 가량 정지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13일 정도가 남았지만 몸담은 카드사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져버려 영업 종료일까지 몰아치기마저도 쉽지 않다.
2만 ~ 3만명의 일자리가 올스톱될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오는 3월말까지 한시적으로 금지됐던 금융회사의 텔레마케팅(TM) 영업이 TM 종사자들의 고용불안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조기에 재개되는 것이다.
기존 고객 정보를 활용한 보험사 TM 영업이 먼저 허용되고, 이어 2월 말 카드사, 보험대리점 등이 제휴를 통해 제공받은 정보를 활용한 영업이 재개된다. SMS(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을 통한 비대면 영업은 3월 중 허용될 전망이다.
고객정보 유출의 진원지이자 행선지처럼 이들을 간주하며 몰아붙였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의 완강함은 4일 오전을 기점으로 급선회했다.
정확한 지점은 이날 오전 열린 국무회의,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금융회사 텔레마케팅의 경우 상당 부분 생계가 어려운 분들이 종사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재 진행중인 금융사 고객 정보 관리 실태 점검 결과를 감안해서 적극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대량 실직 사태를 코앞에 두거나 현실화된 만큼 되돌리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금융노조가 이날 초법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던 대책이 나온 날은 지난달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유럽 등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국내 현안에 대해 언급하기 직전이었다. 뒤집은 것은 설 연휴를 포함해 10여일이 지난 이달 4일이었다.
금융당국은 여러 상황을 고려해 불가피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정책의 수혜자기도 하지만 대상도 되는 국민들은 뒷전이거나 안중에 없었다는 힐난도 뒤따른다. 2차 피해를 막아 국민 불안심리를 잠재우겠다며 설날 연휴마저 반납한채 애써온 금융당국의 노력이 반감되는 아쉬움이 더해졌다.
카드 모집일을 못 하거나 어렵사리 회사가 보전해줄 월급이 평소 씀씀이에 못 미치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 노래방 앞에서 손님을 끌어모으거나, 전단지를 돌리게 될지 모른다. 추워도 주머니에 손 넣지 않고 열심히 전단지를 받아주면 좀 나아질까? 헛헛한 생각이 머리를 맴돌때 마침 들어선 지하철 역 앞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경고문 '출구 앞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면 관련법에 의거해 강력히 조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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