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토큰' 네배로 커졌는데…韓 STO는 '반쪽 시장'[토큰증권 대해부]②

내년 2월 기관용 사모 MMF·사채·비상장주식부터 토큰화
해외는 테슬라·엔비디아 토큰화해 거래…국내는 KRX 시범사업에 그쳐

편집자주 ..."혁신은 시장이 이끌고, 신뢰는 정부가 뒷받침하겠다." 금융당국이 최근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에서 주식·채권·펀드 등 모든 증권으로 넓히며 내건 청사진이다. 하지만 내년 2월부터 열리는 시장은 기관용 사모상품과 비상장주식, 조각투자가 중심이다. 상장주식 등은 언제 토큰화할지 정해지지 않았고, 원장과 유통시장도 기존 자본시장 체계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선언대로라면 토큰증권은 새로운 ‘디지털 자본시장’의 시작이다. 과연 그만큼의 시장이 열리는가. <뉴스1>은 9회에 걸쳐 화려한 청사진 뒤 한국형 토큰증권의 실체와 가능성, 한계를 집중 조명한다.

상장주식을 토큰화하는 글로벌 시장과, 토큰화하지 못하는 국내 시장을 비교한 일러스트.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이미지.

(서울=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7억달러→29억달러.

올해 들어 8개월여 만에 4배 넘게 불어난 글로벌 주식 토큰 시장 규모다.

글로벌 시장에서 상장주식을 기초로 한 토큰화 상품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토큰증권(STO) 시장에서는 당분간 이 같은 상품을 만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토큰화 대상을 주식·채권·펀드 등 모든 증권으로 넓히겠다고 선언했지만 내년 2월 시작되는 1단계 시장은 기관투자자용 사모상품과 비상장주식 등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반면 해외에서는 테슬라·엔비디아·애플 등 인기 상장주식을 기초로 한 토큰화 상품이 이미 거래되고 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4일 발표한 토큰증권 정책방향을 통해 조각투자에 머물렀던 토큰증권 인프라를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금융상품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 토큰증권 관련 제도와 인프라 구축 논의는 부동산·미술품·음원 저작권 등 비정형 자산을 증권화하는 조각투자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토큰증권을 특정 금융상품이 아니라 기존 증권을 분산원장을 이용해 발행하는 하나의 '형태'로 본다는 원칙을 실제 정형증권까지 확대하겠다는 게 이번 정책의 핵심이다.

다만 개정 전자증권법이 시행되는 2027년 2월 1단계부터 모든 증권을 토큰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펀드와 채권은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머니마켓펀드(MMF)와 사모사채부터 시작한다. 주식은 비상장주식을 신탁한 뒤 해당 신탁수익증권을 토큰화하는 방식을 우선 추진한다. 비정형증권에서는 공모 조각투자증권이 1단계 대상에 포함된다.

일반투자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시장의 변화가 당장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테슬라·엔비디아도 토큰으로…8개월 새 시장 4배

해외에서는 국채·펀드 등에 이어 최근 상장주식까지 토큰화 영역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실물자산 토큰화(RWA) 정보 플랫폼 RWA.xyz에 따르면 글로벌 주식 토큰의 분산가치는 이달 초 약 29억달러에 달했다. 연초 약 7억달러 수준과 비교하면 8개월여 만에 4배 이상으로 불어난 규모다.

특히 가상자산 거래소와 블록체인 기업들이 테슬라·엔비디아·애플 등 글로벌 투자자의 수요가 높은 상장주식을 기초로 한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다만 이들 주식 토큰은 테슬라나 엔비디아가 자신의 주식을 블록체인에서 직접 발행한 것은 아니다. 실제 상장주식을 기초자산으로 두고 이를 1대1로 뒷받침하거나 해당 주식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토큰 형태로 구현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는 올해 6월 토큰화 증권 '비스톡스(bStocks)' 거래 지원을 시작했다. 바이낸스 그룹 계열사인 비테크홀딩스(BTech Holdings)가 발행한 증권으로, 기초주식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토큰 형태로 구현한 상품이다. 토큰 보유자가 해당 상장사의 주식을 직접 소유하는 구조는 아니다.

바이낸스는 초기 테슬라·엔비디아·마이크론·샌디스크·서클 등 투자자에게 익숙한 미국 상장주식을 기초로 한 비스톡스 거래를 지원한 뒤 대상 종목을 빠르게 확대했다.

크라켄은 이보다 앞선 지난해 6월 토큰화 주식 서비스 '엑스스톡스(xStocks)'를 출시했다. 출시 당시 테슬라·애플 등 미국 주식 55개와 SPY 등 상장지수펀드(ETF) 5개를 포함해 총 60개 상품으로 시작했다.

엑스스톡스는 실제 주식과 ETF를 1대1로 뒷받침하는 토큰화 상품이다. 다만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주식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미국 투자자가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은 아니다. 크라켄은 적격 비(非)미국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현재도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이용할 수 없다.

주식시장 끝나도 거래…'토큰화'가 바꾼 방식

해외 주식 토큰 시장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단순히 인기 종목을 토큰 형태로 만들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존 증권과 다른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이전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크라켄에서 엑스스톡스는 기존 증시의 정규 거래시간을 넘어 주 5일 24시간 거래할 수 있다. 거래소에서 매수한 토큰을 투자자가 직접 관리하는 개인 지갑으로 출금하는 것도 가능하다. 개인 지갑으로 옮긴 뒤에는 온체인상에서 24시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주식 토큰을 다른 블록체인 서비스로 이전하거나 탈중앙화금융(DeFi)에서 담보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기존 증권시장에서는 증권사 계좌와 중앙화된 인프라 안에 머물렀던 주식의 활용 범위를 블록체인 생태계로 넓히는 셈이다.

상장주식 토큰화에 뛰어드는 곳도 가상자산·블록체인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은 최근 크라켄 모회사 페이워드와 손잡고 영국 상장주식과 연계된 토큰화 상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규제당국 승인을 전제로 24시간 거래시장인 'LSE 24'에 엑스스톡스를 상장한다는 계획이다.

韓 상장주식 토큰화는 시범사업…상용화 시점 없다

반면 국내에서는 상장주식 토큰화를 곧바로 상용화하기보다 시범사업부터 추진한다.

금융위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 등이 추진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참고해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장내시장 토큰화 모델을 검증할 계획이다. 하지만 상장주식을 실제 토큰 형태로 발행·거래할 수 있게 되는 시점이나 구체적인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단계적 접근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주식은 단순히 매매하고 배당을 지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결권과 신주인수권, 증·감자, 주식 분할·병합 등 다양한 권리관계를 처리해야 한다.

이미 구축된 전자증권 시스템과 새로운 분산원장을 연계하면서 이 같은 권리를 안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만큼 처음부터 상장주식 시장 전체를 토큰화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융위는 우선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상품과 비상장주식 등을 대상으로 새로운 토큰증권 인프라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검증한 뒤 공모증권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문제는 속도다. 금융당국은 안정성을 우선해 시장을 단계적으로 열겠다는 입장이지만 해외에서는 투자자 수요가 높은 상장주식까지 토큰화 영역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상장주식 토큰화가 아직 시범사업 단계인 데다 상용화 일정도 제시되지 않았다.

특히 해외 주식 토큰은 기존 주식을 디지털 형태로 옮기는 데서 더 나아가 거래시간 확대와 개인 지갑 이전, 온체인 활용 등 기존 증권과 다른 기능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내건 '모든 증권의 토큰화'를 국내 투자자가 실제 체감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내 STO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투자자 수요가 높은 상장주식이 토큰화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국내 1단계 시장은 기관용 상품과 비상장 자산 위주여서 일반투자자가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