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터줏대감' 하나은행 싱가포르지점…"동남아 IB 허브로 도약"
[세계로 가는 K-금융]①IB역량 힘입어 매년 '역대최대' 실적 경신
"50년 네트워크 기반해 IB 딜 주선…수동적 영업 방식서 탈피"
- 서상혁 기자
(싱가포르=뉴스1) 서상혁 기자 = "처음엔 선원을 대상으로 환전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시간이 늦으면 선원들이 은행 앞에서 잠을 자기도 했죠. 싱가포르에 진출한 국내 외국 점포 중에선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입니다."
싱가포르 최대 상업지구인 래플스 플레이스. 그 안에서도 세계 유수 금융기관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세실스트리트 내 푸르덴셜타워엔 '하나은행 싱가포르지점'이 자리잡고 있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국내 시중은행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초창기만 해도 선박들이 지나는 부두 앞 건물 1층에 자그맣게 자리했다. 선원들에게 환전을 해주고 한국계 지·상사들을 상대로 영업하면서 점포를 키워나갔다.
수십 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킨 하나은행 싱가포르지점은 매년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핵심점포로 성장했다. 특히 올해는 개점 50주년을 맞아 '자금·IB(투자은행) 허브'를 목표로 내세워 또 한 번의 거대한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 1973년부터 싱가포르에 뿌리내린 하나은행…400억대 순익 낸 '효자'로 자리매김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의 '관문'으로서 글로벌 금융회사 600여개가 한데 모인 아시아의 대표적인 금융 허브다. 그간 홍콩과 더불어 금융 중심지 역할을 해왔는데, 홍콩의 중국화가 가속화되면서 싱가포르 입지가 더 확대됐다. 특히 동남아시아 IB 금융의 중심지로서 많은 글로벌 투자기관과 자산운용사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국내 금융사들도 싱가포르를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점찍고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그중 하나은행은 국내 금융권에서 싱가포르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터줏대감'이다. 전신인 외환은행은 지난 1973년 싱가포르에 지점을 설립해 선원과 현지 교민을 대상으로 환전과 송금 영업을 주로 해왔다. 이후엔 한국계 지사가 운영하는 중소기업 위주의 대출 영업에 집중했다.
그 영향으로 아직도 하나은행은 싱가포르에서 리테일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시중은행 중 유일하다. 마진이 크지 않지만 주된 고객군인 한국계 지·상사나 교민의 편의를 위해 창구를 열어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싱가포르지점은 IB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인수금융 등 IB 금융 특성상 현지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실적을 낼 수 없다. 지난해 2월 SK에코플랜트가 싱가포르 폐기물 기업 테스(TES)를 인수할 당시 6억7500만달러의 브리지론을 주선했다. 직접 판을 만드는 '주선' 작업은 탄탄한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하나은행 싱가포르지점 관계자는 "기존 은행의 IB 영업 방식이 글로벌 대형은행으로부터 신디케이트론 초대를 받아 참여하는 '수동적인 방식'이었다면 현재 싱가포르지점은 자산운용사, 사모펀드와의 네트워크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또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등 계열사들과 협업해 글로벌 스폰서들이 참여하는 딜에 직접 참여하는 영업방식으로 전환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이 지난 2021년 설립한 싱가포르 자산운용사 HAMA(Hana Asset Management Asia)도 현재 싱가포르 지점과 IB 딜 주선을 위한 협업을 추진 중이다.
실적도 해를 거듭할수록 개선되고 있다. 하나은행 싱가포르 지점의 지난 2019년말 기준 당기순익은 161억원이었는데 2020년 172억원, 2021년 381억원으로 늘더니 지난해엔 423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싱가포르 지점 관계자는 "여신, IB 수출입 부문 등 다양한 부분에서 균형있는 성장을 이어 나가고 있다"며 "특히 싱가포르 지역 특성상 에너지 업종 고객의 비중이 높은데 전년도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의 상승으로 관련 업계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고 말했다.
◇ "은행 내 동남아시아 IB 허브 될 것"…또 한 번의 거대한 도약 예고
다만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올들어 확대되는 것은 리스크 요인이다. 지난해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급격하게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는데, 실물 경제로까지 여파가 미치는 모습이다. 싱가포르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올 1분기 싱가포르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2.2% 대비 크게 둔화된 0.3%에 그쳤다.
싱가포르 지점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금융시장 불안으로 대출 성장세가 더디다는 점이 싱가포르 지점의 당면 리스크"라며 "최근 한국계 기업들의 주요 투자가 북미 지역 등 선진국 비중이 다소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용 및 재무상태가 우량한 현지 거래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담보나 보증 등 신용보강책을 최대한 확보해 우량한 포트폴리오를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콩의 중국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영업 경쟁이 점차 격해지고 있다는 점은 리스크이자 기회 요인이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글로벌 금융기관이 싱가포르로 아시아 거점을 옮기고 있다. 지난해 KB국민은행까지 싱가포르에 지점을 설립하면서 국내 주요 4대 은행은 모두 싱가포르에 진출하게 됐다.
이에 대해 싱가포르 지점 관계자는 "아시아 IB영업의 격전지가 되면서 영업경쟁은 심화되고 있으나 반대로 자산운용사·증권사·연기금·사모펀드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한 다양한 영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투자하는 글로벌 스폰서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며 "최근 국내 데이터센터, 물류센터 시장 등에 대해 글로벌 스폰서들의 관심이 높은 점에 착안해 한국에 투자하는 스폰서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역시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지점은 IB 등 영업 역량을 바탕으로 하나은행 내 동남아시아 자금시장의 허브 역할을 맡겠다는 포부다. 싱가포르 지점 관계자는 "싱가포르 지역을 넘어 일본, 호주, 베트남, 마닐라, 대만 등의 지역을 아우르는 아시아 지역 본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정보 공유·자금 센터 기능을 통해 지역본부 지점 간 협업해 시너지를 확대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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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금융의 BTS'를 만들겠다." 새 정부의 당찬 포부에 발맞춰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진출'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세계 12위 수준인 한국의 경제규모에 비해 'K-금융'의 글로벌 경쟁력은 미미한 실정이지만 그만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금융의 '디지털화'는 'IT 강국'인 한국에 절호의 기회다. 동남아시아 등 신흥경제국가를 중심으로 입지를 확대하고 있는 'K-금융'의 글로벌 성과를 조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