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 "김혜수·조여정 선배에 보고 배운 대로 '간첩사냥' 찍었죠" [N인터뷰]

최근 개봉 영화 '간첩사냥' 주연 민서 역

박세진/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그분들은 하루에 3시간밖에 못 주무세요. 관리도 해야 해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신 채로 하루 종일 연기하시는데도 6개월 내내 웃고 있는 모습만 보여주셨어요. 그걸 보며 너무 대단하다 느꼈고 저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박세진은 최근 뉴스1과 진행한 영화 '간첩사냥' 관련 인터뷰에서 과거 작품으로 함께 한 선배 김혜수, 조여정 등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김혜수와는 SBS 드라마 '하이에나'(2020), 조여정과는 tvN '하이클래스'(2021)를 함께 했다. '하이에나'에서는 송&김의 시니어 어쏘 변호사 부현아 역을, '하이클래스'에서는 조여정이 연기한 송여울의 남편 안지용의 내연녀 황나윤 역을 각각 맡았다. 모두 주요 배역이었다.

"진짜 축복이에요. 사람은 보고 배운대로 하잖아요. 저는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선배들의 파트너였거든요. 김혜수 선배, 조여정 선배와 작품을 할 때 신급 경지의 인성을 봤어요. 잠깐 나오는 나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분들은 끝까지 웃는 얼굴로 현장을 이끌어 가시는데, 그걸 보며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선배님들을 생각하면서 어떤 역경이나 한계가 다가와도 끝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나요."

선배들에게서 얻은 배움은 '간첩사냥'에서 실천할 수 있었다. '간첩사냥'에서 박세진은 영화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 주연으로 극을 이끌었다.

"제 역할이니까 한 건데 끝날 때 분장 선생님이나 PD님, 스태프 친구들이 '아침마다 웃어줘서 힘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배우가 없다고, 이렇게 끝까지 웃으면서 일하는 배우가 처음이라고 감동했다고 하셨죠. 저로서는 본분을 다한 거지만 그걸 알아주시는구나 싶었죠. 촬영 중에 너무 힘들었던 기간이 있었거든요. 참고 참아 집에 가서 뛰면서 풀고는 했는데 마지막에 다들 이렇게 얘기해주시니까, 감사하고, 뿌듯했어요."

지난 2월 25일 개봉한 '간첩사냥'은 동생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려는 민서와 국가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에 사로잡힌 장수가 '간첩사냥'이라는 황당한 목표 하나로 동맹을 맺어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그린 블랙코미디 영화다. '매혈'(2023) '철수와 영희'(2023) 두 단편 영화로 주목받았던 이준혁 감독의 첫 번째 장편 데뷔작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새로운 과정인 장편랩 1기 작품이다.

박세진/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번 영화에서 박세진은 동생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간첩을 추적하는 20대 여성 민서 역을 연기했다.

"시나리오 초고를 봤을 때 굉장히 실험적이었어요. 더 날 것이었고요. 너무 독특하고 재밌었죠. 왠지 제가 하면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KAFA 영화는 배우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것이거든요. 게다가 여자가 전면에 나서서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작품도 드물고요. 이건 내가 꼭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감독님을 만났죠."

이준혁 감독은 박세진을 만난 후 캐스팅을 확정했다. 박세진은 훗날 감독이 여러 배우의 추천이 있는 중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지해 캐스팅될 수 있었다는 비화를 듣게 됐다.

"KAFA 영화는 관심 갖는 배우들이 많으니 저보다 더 알려진 배우들 이야기도 많이 나왔대요. 그런데 감독님이 단호하게 흔들리지 않고 저를 지지해 주셨대요.(웃음) 저의 프로필 사진을 봤을 때, 눈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 '미성년'에서도 눈이 오래 남는 배우였다고 느끼셨대요. (이번 영화 속) 민서는 극 중 사건을 해결하려 하고 감정을 막 드러내지는 않거든요. 동생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울분이 눈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프로필 보고 이 눈이면 잘 담기지 않을까 생각하셨다고 해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끌고 가야 하는 역할인 만큼 부담감은 컸다. 박세진은 "제작비가 부족해한 것도 있고, 아직은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찍는 거라 고생할 게 너무 확실해 보였다"며 "그런 현장에서 내가 다 끌고 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자신이 없고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을 발휘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미성년'이라는 작품을 22세에 합격해 23세에 찍었으니까.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 엄청난 프로분들이 나를 이해해 주시고 기다려주시고 찬찬히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내가 받은 게 있는 만큼 누군가의 시작을 함께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내가 받은 것처럼 이분들을 잘 기다려주자, 그래서 새로운 것을 얻어보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박세진/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다행히 영화는 부산 올로케이션 작품이었다. 박세진은 본가가 있는 부산에서 현장으로 출퇴근했다면서 촬영이 끝난 뒤에는 집 근처를 달리며 부담감을 떨쳐내려 노력했다고 했다.

"어떤 걸로도 해소가 안 됐어요. 밤에 공원에 가서 음악을 틀고 뛰어야 살겠더라고요. 그 덕분에 러닝이라는 취미를 얻었고 그 뒤로 1년을 뛰었어요. 스트레스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게 뛰는 거라는 걸 알았어요. 배우로 일하며 감정이 몸에 잘 쌓이는 편인데 그걸 푸는 데 러닝만 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됐죠. 다행이었던 건 작품을 하면서 부모님과 지낼 수 있었다는 거예요. 처음으로 부모님이 매일 해주시는 밥을 먹고 아빠가 촬영장에 도시락까지 싸주셨어요."

외국어고등학교 출신으로 명문대 입학을 꿈꾸며 모범생으로 살았던 박세진은 우연한 계기로 연예계에 몸을 담게 됐다. 두 살 터울 친언니가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지원해 보라고 등을 떠밀었던 것. 배낭을 메고 엄마 아빠와 함께 서울에 가서 지원했던 슈퍼모델 대회에서 2000명 중 40명 안에 들어가게 된 그는 이후 180도 바뀐 삶을 살게 됐다.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고, 20대 초반 모델 활동을 하다 적성이 더 맞는 배우로 전향했다.

배우 데뷔작은 2016년 방송된 JTBC 드라마 '마녀보감'이다. 이후 배우 겸 감독 김윤석의 장편 연출 데뷔작 '미성년'(2019)에서 극 중 미희 역을 맡은 김소진의 딸 윤아 역으로 처음 주연을 맡아 주목받았다.

"'미성년'을 만난 뒤에 연기의 맛을 알았어요. 전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돼 그 인물의 아픔을 알아버렸어요. 거기서 나오는 카타르시스가 어마어마했죠."

'미성년'을 만나기 전까지. 배우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을 여러 번 만났고, 평범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포기하고 왜 이렇게 어려운 직업을 택했는지 회의감에 빠질 때도 있었다.

"친구들에게 '이제 연기를 그만뒀다'고 하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연기 해봤는데 내 길이 아니더라'라고 하기에는 연기를 해본 게 없었어요. 오디션만 떨어져 보고 단역만 해봤지 연기를 해보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 말을 하기에 너무 부끄러웠어요. '연기는 내 길이 아니더라'는 말을 하고 그만두려고 연기를 한 번 제대로 해보기로 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이제 박세진은 배우라는 소개가 어색하지 않은, 오롯이 제 몫을 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좋은 작품과 좋은 선배들을 통해서 배울 것을 찾았고, 이전보다 더 성장하고 편안해진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흐름이 아닌가 싶어요. 흐름을 거스르고 대항하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겪고 사색하면서 '그래,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흘러가는 대로 잘 흘러가 보자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eujenej@news1.kr